
“입센 희곡 전집을 완역한 김미혜 교수님이 3일 간 특강을 했어요. 입센의 작품은 물론 그의 성향, 심지어는 북유럽의 날씨까지. 결국 헨리크 입센이 주인공 ‘헤다’더라고요.”
이영애 주연의 연극 ‘헤다 가블러’가 개막 1주일 차에 접어들며 순항 중이다.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영애는 인터뷰 내내 ‘헤다 가블러’, 나아가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데뷔 35년 차 배우 이영애에게도 32년 만의 연극 무대는 설렘과 동시에 부담을 줬다. 그는 “옛 연인 ‘에일레트’(이승주)와 연기하는 장면에서 기침이 나올 뻔 해 속으로 ‘살려주세요’라고 얘기했던 적도 있다”며 무대 위에서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이어 “노하우가 없어 공연 시작하기 3~4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못 먹는다. 그래서 살이 빠졌나 보다”라며 웃었다.
1300여 석 규모의 대극장 무대인 만큼 고민이 컸다. 그는 “우리 무대의 묘미는 큰 오브제들과 카메라 클로즈업”이라며 “연극적, 미학적 요소를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무대 위에는 카라바조의 그림 ‘바쿠스’, 날아가지 못하는 풍선 다발 등이 놓여 있다. 이영애는 “풍선은 날고 싶은데 날아가지 못하는 화려한 헤다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라고 전했다. 카메라를 활용한 실시간 클로즈업을 통해 배우들의 연기를 영상처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작품의 특징이다.
입센의 헤다는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억압과 제약에 짓눌린 상황 속에 처한 인물이다. 그 속에서도 자유를 갈망한다. LG아트센터의 작품에서는 19세기 말 노르웨이라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은 지우고 현대성을 더했다. 관객들에게 나를 짓누르는 여러 사회적·현실적 굴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길 바라는 취지에서다.
화려한 보라색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은 이영애를 보다 보면 극 중 “바로 그 헤다”라는 대사에 걸맞은 배우라는 평가가 절로 든다. 그는 “디자이너 선생님께 보라색 옷을 입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헤다’는 애매모호한 누구하고도 잘 어울릴 수 없는 색깔을 가진 여자”라고 설명했다.
이영애의 ‘헤다’는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젊은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점”이라고 했다. “헤다와 다른 인물들 사이에 생기는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브라크 판사’에게는 편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하고, ‘에일레트’에게는 사랑과 애틋함, 남편 ‘테스만’에게는 까칠함을, 그리고 ‘테아’한테는 악마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공연은 내달 8일까지 계속된다.
김유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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