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 역대 대선으로 본 단일화 방정식

 

16대 대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성공했지만 鄭 지지철회

시너지보다 동정론의 승리 분석

 

18대 대선 ‘문재인+안철수’

룰 접점 못찾아 안철수 중도사퇴

박근혜에 ‘3.53%P’ 차이로 패배

 

20대 대선 ‘윤석열+안철수’

합친뒤 0.73%P 差 이재명 눌러

역풍으로 李지지층 결집 분석도

 

21대 대선 김문수+이준석?

尹 놓고 이견 커 가능성 낮지만

이재명 1강 구도 깰 ‘핵심 변수’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을 뽑는 선거 때마다 단일화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YS(김영삼)·DJ(김대중)를 시작으로, 단일화는 선거 승리의 공식처럼 거론됐고 특히 ‘막판 변수’로 꼽히는 단골 소재였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와 무소속 예비후보로 대선판에 등장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가 실패했지만, 이번 21대 대선에서 단일화 변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독주 속에서 김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의 단일화 성사 여부는 여전히 변수이자,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단일화에 성공했다고 승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일화가 반대편 지지층을 결집하는 역풍을 불러온 사례도 있다.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성공은 대선 승리? = 국민의힘 당원 10명 중 8명 이상은 당 경선을 통과해 선출된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가 대선 승리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으로 봤다. 이 같은 당 여론조사 결과를 기초로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후보 교체 시도를 강행했다. 대선 승리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기호 2번’인 단일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작용했다.

이는 대선 후보 선출 취소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 교체 플랜에 동의한 당원은 과반이 되지 않았다. 또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을 중심으로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계엄 작전을 펼치듯 새벽 시간대에 김 후보 선출을 취소하고 새벽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사실상 한 전 총리만을 위한 후보 등록을 진행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가 순조롭게 성사됐더라도 시너지는 제한적일 거라는 회의적인 분석이 적지 않다. 최근 여론조사의 이재명 후보와 가상대결에서 김 후보와 한 전 총리가 비슷한 격차로 이 후보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이 후보의 지지율은 상대가 김 후보든 한 전 총리든 별 차이가 없었다. 김 후보 측 김재원 비서실장이 당 지도부 주도 단일화 논의에 대해 “이재명, 한덕수 또는 이재명, 한덕수, 이준석 이런 양자 대결이든 3자 대결이든 이런 여론조사를 보면 김문수 후보나 한덕수 후보나 큰 차이도 없다”며 ‘단일화=후보 끌어내기’라고 일관되게 주장한 이유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설령 한 전 총리로 후보를 교체했더라도, 김 후보 측이 법적 대응을 예고했던 만큼 지지층이 쪼개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후보 교체를 강행했다면 단일화 시너지는커녕 1+1=1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실패 사례 문재인·안철수…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 = 18대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고리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문 후보로 단일화를 이뤘다. 하지만 결과는 득표율 48.02% 대 51.55%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단일화를 이루고도 대선에서 진 유일 사례다. 안 후보는 당시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지금과 존재감 자체가 달랐다.

당시 다자 구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30∼40%대,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각 10∼20%대였다. 단일화만 잘 이룬다면 해볼 만한 승부였다는 평가 속에 두 후보는 단일화 룰을 둘러싸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문 후보 측은 ‘적합도 50%+가상대결 50%’ 및 새누리당 지지층 역선택 방지, 안 후보 측은 ‘지지도 50%+가상대결 50%’ 및 박근혜 지지층만 역선택 방지를 주장하며 맞섰다.

그러다 안 후보는 돌연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26일을 앞둔 2012년 11월 23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는 당시 “단일화 방식을 놓고 더 이상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했다. 이번 국민의힘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김문수 후보 측이 역선택 방지 조항 적용 여부와 당심과 민심 반영 비율 등을 놓고 한 전 총리 측과 접점을 좁히지 못한 것과 복사판이다. 문 후보는 안 후보의 중도 사퇴로 사실상 단일화를 이뤘지만, 순탄하지 않았던 단일화 과정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성공이 대선 승리에 결정적? = 직전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후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이에 단일화가 윤 후보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두 후보는 사전투표 하루 전인 2022년 3월 3일 단일화에 합의했다. 하지만 단일화를 하지 않았더라도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고, 오히려 더 큰 격차로 승리했을 것이라는 반박도 적지 않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인 이른바 깜깜이 기간에 이뤄졌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에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윤석열-이재명 후보 양자대결 지지율 격차가 안 후보 등을 포함한 다자대결 때보다 더 좁혀지는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아울러 20대 대선에서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호남의 전남·전북·광주가 전국 1∼3위를 기록했다. 이에 민주당 측은 윤·안 후보의 단일화 역풍으로 이 후보 지지층이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안 후보가 사라지면서 여성 유권자가 이 후보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는 사후 분석도 나온 바 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성공은 시너지 아닌 동정론 덕 = 이번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일화 사례는 단연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다. 대선을 한 달 앞둔 당시 ‘1강(이회창)·2중(노무현·정몽준)’ 구도였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차 컷오프(예비경선) 결과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나는 2002년 노무현 대선을 꿈꾸는데 다른 사람들은 2007년 정동영 대선을 하는 것 같다”며 “당 (대선) 후보가 되고도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응했던 것처럼, 이회창 대세론 속에서 나 홀로 분전했던 것처럼 국민만 보고 묵묵히 노무현 대통령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정 후보 단일화는 담판이 아닌 유일한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대선 후보 단일화이기도 하다. 김문수 후보도 이 같은 노·정 후보 단일화 방식을 차용, 한 차례 토론회를 거쳐 이틀간 여론조사를 돌리는 단일화 방안을 한 전 총리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노 후보가 정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이겨 단일 후보로 정해졌다. 정 후보는 승복하고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선거일 하루 전인 2002년 12월 18일 늦은 저녁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노 후보의 대선 승리는, 단일화 시너지보다는 동정론에 따른 승리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위기감을 느낀 지지층이 결집한 결과라는 것이다.

◇21대 대선 단일화 막판 변수 될까? = 최근 여론조사의 흐름은 1강(이재명)·1중(김문수)·1약(이준석) 구도다.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정반대의 견해를 보이고 있다. 주요 지지층의 연령대에도 큰 차이가 보인다.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하면서 다른 후보의 지지층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다면 ‘1+1=2’를 뛰어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두 후보 지지층의 간격이 워낙 크다는 점에서 제대로 시너지가 날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탄핵 관련 인식 차가 너무 커 김문수·이준석 후보 간 단일화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현 1강(이재명) 구도에서 두 후보 간 단일화가 승패의 핵심 변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정선 기자
윤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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