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병이 도질 때마다/ 밥이 약이다, 가만히 차려 내온 고봉밥이/ 한 생이 공들여 지은/ 집과 밥,/ 찬란하고 융숭한 유산인 걸 몰라서// 그놈의 밥, 사육당하는 거 같잖아! 밥상 엎고 집 나온 후 가장 자주 듣는 말// 밥 빌어먹고 살겠니?’

- 서귀옥 ‘집밥’(시집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

식당이 지천인데 먹을 게 없다. 먹고 싶은 게 없다. 점심시간이 되면 겁이 다 날 지경이다. 오늘 점심엔 무얼 먹나. 아니, 어떻게 때우나. 일단 나가자. 이 메뉴는 어제 먹은 것이고, 이 식당은 너무 자주 가서 물리고, 이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더라. 여기는 만석이네.

식당가를 배회하다 보면 도시락을 싸볼까, 절로 생각하게 된다. 금방 고개를 젓는다.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 어릴 적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은 호강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반찬 투정을 했다니 이제야 부끄럽다. 회사 내 식당이 있는 직장은 얼마나 좋을까. 매일매일 달라지는 식단이라니. 혼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아닌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메뉴를 매일 같은 사람들과 먹는 일 또한 고충일 수도 있겠지. 어디 집밥 같은 곳 없나. 그런 곳이 있을 리가. 마땅한 식당을 찾아내지 못하고 휘적휘적 걷다가 노포를 하나 발견한다. 이런 곳이 있었나. 점심시간인데도 한적하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도 날 것만 같고. 그러나 발걸음 돌리지 않고 자리에 앉아 순두부찌개를 시킨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뚝배기를 기다리면서, 조바심과 허기가 뒤섞여 군침 도는 기대로 변하는 걸 느끼면서, 그럼에도 나는 식당을 찾아가는 게 참 좋다는 생각.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같은 자영업자끼리 서로를 찾아주는 게 얼마나 좋아. 집밥이야 늘 그리운 거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맛나게 먹고 즐겁게 배부르면 좋은 식사가 아닌가. 그러니 가벼운 찬 몇 가지와 함께 나온 찌개를, 한 입 떠먹어본다. 맛나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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