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문화부장

배우 선우용여의 ‘호텔 조식’ 에피소드가 화제다. 1945년생으로 올해 80세인 그가 ‘순풍 선우용여’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영상이 보름여 만에 구독자 약 14만6000명을 돌파했다. 말 그대로 호텔에 조식 먹으러 가는 내용이다. 오전 6시에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 선우용여는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직접 몰고 인근의 A 호텔 조식당을 찾는다. 특급호텔인 A 호텔의 조식은 못 해도 6만 원이 넘는 가격. 한 끼 식사로는 꽤 비싸다. 만약 다른 젊은 연예인이 그랬다면 꼴불견 소리를 듣거나, 사치가 과하다는 핀잔과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우용여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팔십 평생 열심히 살았고, 이제 그에 대해 스스로 보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생 역정을 듣고 있으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홀로 두 자녀를 키웠다. 젊어서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 했고, 유학 보낸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서 공장과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 와중에도 몸 관리를 잘해 80대의 나이에도 건강하다. 운전도 잘하고 발걸음도 가볍다. 항상 모든 일에 양보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젊게 산다.

선우용여의 말은 억만금의 기부보다 값지게 들린다. 같은 노년층에는 “집에 있지 말고 어디든 가라”고 조언하고, 젊은층에는 “힘들다고 한탄만 하면 좋은 일이 오다가도 떠난다. 힘든 걸 이겨내라”고 격려한다. 그는 “남편이 돌아가시고, 애들 시집 장가가고, 그럼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냐”면서 “나 자신을 위해 살라”고 제안한다. 타의 귀감이 되는 생활 태도, 간결하지만 분명한 인생 철학에 ‘추앙’의 댓글이 넘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언행도 커다란 울림을 준다. 자선단체를 운영 중인 게이츠는 최근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는 시점을 더욱 앞당기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20년간 내 재산의 사실상 전부를 게이츠재단을 통해 전 세계의 생명을 구하고 개선하는 데 기부하겠다”라며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겠지만, ‘그가 부유하게 죽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은 재산의 99%를 기부할 계획이며, 이는 현재 가치로 1070억 달러(약 150조 원)에 달한다.

김장하 선생 같은 ‘어른’도 있다. 김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약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남몰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평생 기부와 선행을 이어왔다. 최근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학창 시절 김 선생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일화가 재조명되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진짜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너무 엄숙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벌었고, 사회적 지위를 얻었으면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무겁게 해석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책임 실천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게이츠처럼 하기는 다시 태어나도 힘들 것이다. 김 선생을 본받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저 선우용여처럼이라도 자신 있고 용기 있게 유쾌하게 더불어 살면 된다. 그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김인구 문화부장
김인구 문화부장
김인구 기자
김인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1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