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 재집권 이후 연방판사 5명 지명
‘낙태 금지법’ 옹호한 허맨도퍼
항소법원 판사로 첫 낙점 이어
미주리州 연방법원 4명도 교체
현재 미국내 재판관 공석 46석
“4년간 100명이상 임명 가능성”
트럼프 1기땐 234명 판사 바꿔
사법부 오른쪽으로 재편하기도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사법부 보수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1기 행정부에서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포함해 234명의 법관을 임명, 사법부의 보수화를 가속화시켰던 트럼프 대통령이 2기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시작하는 모양새다. 4년 임기 동안 100명 이상의 연방 판사를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당장 13일(현지시간) 기준 연방법원 판사 결원인 46명부터 차근차근 보수 성향 판사들로 채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법부 보수화 시동 건 트럼프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자신이 만든 SNS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신시내티에 위치한 제6연방순회항소법원의 공석에 테네시주 공화당 법무장관 밑에서 일한 휘트니 허맨도퍼 변호사를 지명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글에서 허맨도퍼에 대해 “우리 법률 체계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투사(파이터)”라고 썼다. 허맨도퍼는 주 법무장관실에서 테네시주의 낙태금지법을 옹호했고,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추진했던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차별금지법 철폐에 앞장섰던 보수 성향 인사다. 그는 연방대법원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등의 재판연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 지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4년 동안 연방법원에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100명 이상의 지명자 중 첫 번째 지명”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이민 및 연방정부 몸집 줄이기를 계속 방해하는 사법부에 보수적 도장을 찍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에는 미주리주 연방지방법원 판사 4명을 한꺼번에 지명했다. 이날 지명된 후보에는 미주리주 공화당 법무장관인 앤드루 베일리의 법무팀 소속인 조슈아 디바인과 수석 부법무장관 마리아 라나한이 포함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베일리 주 장관은 성명에서 디바인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 학자금 대출 구제 금융을 해체하든, 미주리 어린이들을 해치려는 급진적 시도를 막든, 조슈아는 모든 단계에서 정확성과 근성,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머지 두 자리는 세인트루이스 연방검찰청에서 근무하는 재커리 블루스톤과 미주리주 항소법원에서 근무하는 크리스티안 스티븐스 판사 등 전·현 연방검사 출신 인사로 채웠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을 비롯한 연방법원 판사들은 대통령 지명과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상원에서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의 견제와 무관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큰 방해나 타협 없이 그대로 연방법원의 구성에 반영되는 구조다. 자연스레 트럼프 대통령이 5명의 연방 판사 임명을 시작으로 보수 성향 인사들을 연방 판사직에 채워 넣으려는 시도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지명할 수 있는 연방 법관 공석은 항소법원 3석, 지방법원 43석 등 46석이지만 4년 임기 내 추가적인 공석이 생기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100명 이상의 연방법원 판사를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연방법원 판사들에 의해 강경 이민 정책이나 연방공무원 구조조정 등이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연방법원의 보수화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안정적 국정 운영의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삼권분립의 큰 틀을 훼손하는 무리한 시도는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대법관 9명 중 3명, 전체 890명의 연방 판사 중 4분의 1이 넘는 234명을 바꿨던 1기 때보다는 사법부 보수화 기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 재편보다는 내각이나 재외공관의 외교관 선임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썼다. 상원 사법위원회 소속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많이 당하고 있지만 외교관 지명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은데 거기에 별다른 이의는 없다”고 말했다.
◇사법부 성향 확 바꿨던 트럼프 1기 =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4년 동안 234명의 판사를 임명했다. 특히 연방대법관 9명 중 3명을 임명, 정치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던 연방대법원이 보수 쪽으로 확 기울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명 모두 보수 성향 인사로 채워 넣으며 연방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의 구도가 됐다. 리 엡스타인 워싱턴대 교수와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 교수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 임명된 대법관들은 주로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뜻에 따르지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임기 이후로 대통령과 대법관 간 동기화는 갈수록 옅어지고 있는 추세긴 하다. 그럼에도 오바마 전 대통령과 공화당 주도 상원 간 밀고 당기기 끝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행사한 닐 고서치 대법관, 연방대법원의 균형을 유지해 왔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후임인 브렛 캐버노 대법관, 차기 대통령 선거 직전 극적으로 상원 인준을 받은 배럿 대법관까지, 모두 전임자들에 비해 보수 성향 인사들이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에 임명됐다. 이들은 모두 상원 인준에서 45표 이상의 반대표를 받았다.
연방대법원뿐 아니라 일선 법원 역시 트럼프 4년을 거치며 보수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 사법부의 구성을 놓고 미국 정치권도 4년마다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려 234명의 연방 판사를 임명하자 바이든 전 대통령은 대선 패배 후인 지난해 12월 24일 2명의 연방 판사가 상원 인준을 받은 것까지, 재임 기간 1명의 대법관 포함 모두 235명의 판사를 임명했다. 1980년대 이후 4년 임기 동안 가장 많은 판사를 임명한 사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마지막 박차를 가해 트럼프 당선인이 첫 임기 동안 사법부를 오른쪽으로 기울게끔 재편하려 한 흐름에 맞설 수 있기를 원했다”고 썼다.
민병기 특파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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