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쓰는 로봇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가늠도 어려운 AI 문학의 미래
장르·형식·향유·작법까지 창조
현재는 창작·비평 보조수단 정도
인간 위협한다고 배격하기보다
적절한 활용방안 논의해야할 때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럼에도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자신하던 것들이 있었다. 바둑이 그랬다. 하지만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4승 1패를 거두면서, 바둑마저 AI의 것이 되었다. 그림도 척척, 음악도 클래식에서 대중음악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삶 속에서도 AI는 익숙해졌다. 다들 자신의 얼굴을 지브리풍으로 바꿔보지 않았던가. 세상 풍조가 이처럼 달라졌음에도 인간만의 영역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문학’이다. 인간이어야만 가능한 상상력이 있고, 그 상상력 위에 인간만이 가진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대도 이제 난망(難望)이다. 문학평론가이자 AI 교육 연구자인 노대원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소설 쓰는 로봇’에 따르면,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LLM) AI의 출현으로 문학은 물론 문학비평의 지형마저 바뀌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소설 쓰는 로봇’이 “AI, 포스트휴먼, 인류세, SF에 집중하는 주제 비평집”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질문한다. “AI가 기존 문학 장르의 글쓰기를 넘어서 새로운 문학 장르와 형식, 실천과 향유 방식,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사실 AI는 이미 문학의 지형 깊숙이 들어왔다. 저자는 최근 몇 년 사이 문학 분야마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인공지능이 창작 과정에 통합되는 등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고 지적한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거대 언어 모델 AI가 있다. 저자는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생성 문학’(generative literature)이 “우리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문학계를 재편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그 자체로 창작자의 영역을 위협하기보다는 상상력과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 즉 창작자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와 형식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AI를 포함한 작가들로 구성된 팀”에 의한 문학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AI 기술의 현 단계에서는 ‘AI는 문학 창작과 비평의 유용한 보조수단’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AI가 문학과 문화를 변화시킬 힘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AI의 문학적 활용 가능성을 논한 1부와는 달리 2부부터는 포스트휴먼과 인류세 등이 현재의 문학과 어떻게 조응하는지에 대한 인상 비평에 가깝다. 저자는 정세랑의 SF 단편 ‘11분의 1’을 통해서는 인간 이후의 인간, 혹은 인간의 자리를 벗어난 인간인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전 단계인 과도기적 인간 존재, 즉 트랜스휴먼(transhuman)에 대해 고찰한다. 김창규의 SF 단편 ‘계산하는 우주’에서는 외계 행성에서 진행되는 테라포밍 프로젝트를 통해 포스트휴먼 시대의 명암을 조명한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SF적 상상력과 결합했다고 해서 인간적 성찰의 가능성마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새롭게 탄생하는 포스트휴머니즘적 서사들이 오히려 “인간의 자리가 위태로운 시대, 인간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성찰하는 이야기”로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의 악몽 때문이겠지만, 인류세에 관한 서사에 팬데믹을 다룬 소설들이 여럿이다. 김보영의 경장편 ‘역병의 바다’는 한센병처럼 얼굴과 몸이 흉측해지는 전염병인 ‘동해병’이라는 가상의 병을 통해 “인간중심주의 속에서 인간의 시야로 보기에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볼 수 없는 세계를 망각”한 우리에게 비판의 시선을 덧댄다. 좀비 소설도 빠질 수 없다. 손홍규의 ‘서울’은 “불타고 무너진 빌딩과 시체가 아니면 학살자와 성난 짐승과 좀비들이 장악”한 도시를 조명한다. 재앙의 원인은 모호하되, 살아남은 생명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고통의 방식에 저항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개는 절망하겠지만) 희망을 품게 한다. ‘소설 쓰는 로봇’에서 저자가 AI가 견인할 문학적 현실 뒤로, 흔히 SF 혹은 장르문학이라고만 규정하는 다양한 문학들을 붙인 이유는, 어쩌면 그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당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9세기 초반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AI를 배격하는 일은 이제 무의미하다. 저자가 “AI의 창조성에 관한 토론보다는 러다이트적 실천을 논할 때”라고 말한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404쪽, 1만7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