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을 뭐라 부르든, 곡물을 가늘고 길게 뽑아 만든 음식을 먹을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우리가 국수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긴 면발이 국물 속에 잠겨 있어 젓가락으로 건져내듯 해서 먹어야 한다. 국수의 길이를 사람의 명줄로 여기기도 하니 웬만하면 국수 가닥을 끊지 말고 먹어야 한다. 이렇게 먹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후루룩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입을 최대한 벌려 면을 ‘흡입’하듯이 먹으면 더 큰 소리가 나는데 이 모든 방식을 우리는 면치기라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스파게티라 부르는 것은 국물이 거의 없어 접시에 담겨 식탁에 오른다. 이들은 젓가락을 쓰지 않으니 포크를 이용해 한입 크기로 돌돌 말아 입에 쏙 넣어 먹는다. 스파게티 또한 포크로 면발을 들어 올리듯이 입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흡입’할 수 있지만 식탁 예절을 중시하는 서양 사람들답게 이렇게 먹는 경우는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면치기라는 말과 이 말이 가리키는 행동은 드물다.
그렇다면 우리와 비슷하게 국물이 많은 국수 요리를 젓가락으로 먹는 일본에서는 어떨까? 일본에서 국수를 먹을 때 면치기를 하며 후룩후룩 소리를 냈다가는 야만인 취급을 받기 쉽다. 일본의 라멘집이나 우동집에는 혼자서 먹는 자리가 많은데 이렇게 먹었다가는 옆 사람이 자리를 옮길지도 모른다. 일본의 이런 경향은 나이가 어린 세대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면치기는 배고픔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내는 소리일 수도 있고 맛있게 먹는다는 티를 내기 위해 일부러 내는 소리일 수도 있다. 배가 고파도 점잖게 먹는 이들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 조용히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요즘 우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면치기가 마치 ‘국룰’인 것처럼 소개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 땅에서의 유행일 뿐이다. 국수를 말아 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아닌 한 면치기는 삼가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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