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장, 前 국방대 부총장

세계화력지수센터(GFIC)에서 최근 ‘2025년 한국이 세계 5위, 일본은 8위, 북한은 34위의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제쳤다고 흥분하고, 북한은 한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얕잡아 보기도 한다. 북한은 2022년까지는 28위였으나 그 후 34위로 밀려났다.

그런데 세계의 유수한 군사전문가나 선진국들은 이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 센터는 공식적인 연구기관도 아니고 군사 싱크탱크도 아닌, 미국의 한 블로거가 운영하는 비공식적인 독립 웹사이트이기 때문이다. 더욱 객관성을 의심받는 것은, 그 평가 방식과 가중치를 공개하지 않는 점이다. 탱크나 야포, 전투기의 숫자, 경제력을 가지고 평가한다. 핵무기와 핵투발 수단인 미사일은 완전히 제외한다. 그러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당사국인 우리에게 핵과 미사일 위협을 제외한 군사력 비교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남북한 간 재래식 군사력지수가 100 대 80이라고 하면, 북한의 핵미사일이 재래식 군사력의 50%라고 가정할 경우 남북한 간 핵·재래식 통합 군사력 비교는 100 대 120으로 역전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핵무기 2발로 끝났다고 보면, ‘현재 100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군사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김정은이 “(북한) 핵무기의 임무가 전쟁억지와 보복타격에 한정되지 않고 핵선제공격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매년 핵전쟁 연습과 전술핵운용부대의 군사훈련을 지도하고 있는데, 핵무기를 제외한 채 한국이 북한보다 우세하다는 말은 현실과 맞지 않다. 또한, 이런 가설에 근거해 효과적인 국방정책이나 군사전략을 세울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세계화력지수(GFI)가 유독 많이 사용되는가? 북한의 핵과 군사 위협을 부정하려는 이들이 이 뉴스를 인용한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한국이 북한보다 군사력이 월등한데 왜 국방비를 인상하며, 왜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왜 한미연합훈련을 하느냐’고 따질 때 이 GFI를 인용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북한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데 왜 한국은 북한에 대해 킬체인, 미사일방어, 대량보복전략 운운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세계의 권위 있는 군사전문가들이나 선진국이 신빙성 없는 화력지수라고 설명해도 그 의견은 설 자리가 없다.

이제는 우리 국방부가 직접 나서서 GFI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반영한 총체적인 군사력 균형 평가를 해서 대내외에 설명해야 한다. 냉전 시기 미국에서는 저명 군사 연구기관에서 유럽 지역의 핵·재래식 통합 전쟁 모델을 개발, 그 연구 결과를 가지고 전력 증강 대안과 군비통제 협상 대안의 개발에 활용한 적이 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따라서 국방부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저명 국방연구기관이 공동으로 북한이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통합해서 전쟁을 수행할 경우에 그 결과를 예측하는 동태적 컴퓨터 전쟁 모델을 개발, 이 모델을 가지고 남북 간 핵·재래식 통합 군사력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 국방부는 지난 2000년부터 ‘중국의 군사 및 안보 위협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한다. 우리 국방부도 이를 참고해 ‘북한의 군사 및 안보 위협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매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여야를 떠나 초당적 입장에서 북한의 핵과 군사 위협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 대처 방안을 내놔야 한다. 이런 작업이 계속돼야 GFI 같은 비전문적인 군사력 비교가 우리 사회에 횡행하지 않게 된다.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장, 前 국방대 부총장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장, 前 국방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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