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매년 5월 19일은 ‘한국판 에디슨의 날’, 즉 ‘발명의 날’이다. 1957년 시작된 발명의 날은 측우기(測雨器·사진)가 규격화되고 체계화돼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해 제정됐다.
한국 최고의 발명가로 조선시대 중기의 과학자 장영실을 꼽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세종 때 만들어진 거의 모든 천체 관측기구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강우량의 정확한 측정은 매우 중요했다. 전국 고을 수령들은 비가 오면 비의 양을 재어 한양에 보고했다. 그런데 비의 양이 사람이 보는 눈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441년(세종 23년) 강우량 측정법인 우량계 ‘측우기’가 발명됐다.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기구로 평가받고 있다. 이탈리아 카스텔리의 우량계(1639년)보다 무려 198년이나 앞선다. 측우기는 1442년부터 전국에 설치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측우기는 빗물을 재는 그릇이라는 뜻. 비가 온 뒤에 측우기 속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쟀다. 측우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든 원통 모양의 측우기 중심 부분과 이것을 받쳐 주는 돌로 만든 측우대,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는 자 등이다. 깊이가 약 30㎝, 지름이 약 15㎝ 정도 된다.
장영실이 측우기를 만든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할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실제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은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의 장남인 문종(1414~1452년)이다. 측우기를 처음 생각해내고 주도한 인물이 문종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문종이 세자 시절에 그릇 등에 빗물을 받아 양을 재는 방식으로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물론 문종이 측우기를 실험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장영실 등 과학기술자의 도움을 받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측우기 발명의 원조는 문종이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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