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시인과 촌장 ‘좋은 나라’

스마트폰 메신저에 겸손한 말이 뜬다. ‘그 정돈 아니에요.’ 이런 언사를 대문 앞에 건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 의문이 풀렸다. 흥미로운 사연이다. “이 얘기 글로 써도 될까요.” 답은 다시 원점이다. “그 정돈 아닌데요.” 하지만 그냥 이 정도로 웃고 넘기기엔 좀 아깝다.

수다로 넘기기 아까우면 수기로 남기자. 실명 공개도 허락받았으니 안심하고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첫 장면은 신경외과 의사들의 학술행사장이다. 엄숙한 자리에 노래채집가가 왜? 그런 자리에도 쉼표와 느낌표는 필요하다. 손끝에서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오간다면 그 긴장 상태가 오죽하겠는가. “시간의 여백이 생길 때 좋은 음악으로 의료진의 신경도 어루만져주세요.”

퇴장하면서 다음 연사와 눈이 마주쳤다. TV에서 익히 본 얼굴이다. 의사인데 기자로 일하는 조동찬. 배턴 터치하며 딱 한마디 던졌다. “멋지십니다.” 두 개나 전문직을 가져서가 아니다. 의사가 왜 저래, 기자가 뭐 저래 할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담백하고 진지하게 균형 잡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문패(SNS)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매력 있는 의사 기자가 방송에 등장하니 누군가 이런 소문을 냈다. “비주얼이 연예인급이더라.” 평소 뉴스를 안 보던 지인이 방송으로 확인을 한 모양이다. 그러곤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 정돈 아니에요.’ 그 평가가 돌고 돌아서 당사자의 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기자를 그만두고 대학으로 가는 조동찬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잘난 체하지 말자. 누가 나를 과대평가할 때마다 스스로 돌아보자. 그리고 다짐하자. 그 정도는 아니에요.”

노래채집가의 벽은 버리지 못한 음반들로 빼곡하다. PD 시절 받았던 게 대부분이다. 버리지 못하는 건 거기 그들의 마음과 눈물이 담겨서다. 먼지 낀 표지마다 PD를 향한 찬사와 감사가 적혀 있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데. 그냥 그때 그런 자리였던 거다. 아무튼 그게 쌓여서 짐이 됐다. 아쉽지만 이제 눈 딱 감고 치울 때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가수가 직접 펜으로 쓴 내 이름과 당시의 직책을 지워버려야 한다. 사실은 그게 힘들었다. 한 장 한 장 매직으로 지우고 일부는 찢으며 무대에서 사라진 가수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했다.

과감한 분리수거로 넘길 건 넘기고 남을 게 남았다. 오늘 내가 집어 든 음악의 주인은 하덕규(시인과 촌장)다. 1997년 4월 9일 그는 CD 오른쪽 밑에 ‘고마운 형’이라고 손수 적어서 선물했다. 과연 내가 그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나. 그 정도는 아닌데. 오히려 그가 내게 고마운 사람이다. 그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괴로울 때 마음의 ‘가시나무’를 뽑도록 영혼에 힘을 실어주었다. 세상이 흔들릴 때마다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진 마음들을 ‘진달래’로 피워냈다.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여기저기서 고함 지른다. 그들은 정도(正道)와 정도(程度)를 혼동하는 듯하다. 나는 그다음이 궁금하다. 수고 많았다고 서로 등이라도 두드려줄까.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하덕규 ‘좋은 나라’) 인물 좋은 사람이 많아서 좋은 나라는 아니다. 다정하고 겸손한 사람이 많아야 좋은 나라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을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라 노래(제목 ‘풍경’)한 하덕규는 새날을 소년처럼 예감한다. ‘티 없는 내 마음 저 푸르른 강을 건너 영원한 평화로움에 잠길 새날이 올 거야’(시인과 촌장 ‘새날’).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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