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문화부 차장

‘종교의 시대’는 오래전 막을 내렸다. 종교인과 신자가 급격하게 감소한 21세기 초반을 두고 신학자들조차 ‘종교 없음’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 선종 이후 새 교황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까지, 약 한 달간 인류가 보여준 풍경은 무엇인가. ‘빈자의 성자’로 불렸던 전임 교황의 생애는 전 세계가 추억하며 애도했고, 새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 회의인 콘클라베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탈리아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엔 15만 명이 운집했다. 종일 시스티나 성당 굴뚝을 바라보던 이들은 교황이 결정되지 않았을 때 피어오른 검은 연기에 탄식했고, 드디어 흰 연기가 보이자 환호하고 환영했다. 지난 18일 열린 레오 14세 교황 즉위 미사는 또 어떤가. 전 세계에서 25만 명 이상이 모여들었고, 국내서도 많은 사람이 유튜브나 OTT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흥미롭고 놀랍다. 종교의 종언이 아니라 종교의 건재를 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2000년을 지속한 교황 제도, 800년 역사의 콘클라베.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알려진 교황의 역사나 교황 선출의 독특한 방식 등은 그 자체로 21세기 인류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 ‘희망’도 영향을 줬고, 동시에 영향을 받았다. 여기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생 보여준 청빈한 삶과 개혁 정신에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이 감화된 덕도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국제 정세가 더 혼란해진 가운데,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 탄생한 것도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국내에선 절판된 ‘교황 연대기’가 재출간됐는데 이 역시 가톨릭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한다. 혹시 사람들은 다시 종교를 찾게 될까. 천주교 신자는 늘어날까. 그러나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를 떠올리면, 그때도 그랬듯이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종교인의 증가나 제도권 종교 활동의 확대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선종한 교황과 새 교황을 통해 사람들이 보려 한 건 뭘까. 종교적 감흥이나 교훈도 아니고, 신앙이나 영성도 아니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격조 높고 검소한 장례 미사와 오랜 전례의 콘클라베, 그리고 형식 자체로 숭고미를 느낄 수 있었던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를 지켜보며, 사람들이 지금 가장 갈망하는 건 현대사회가 필요 없다며 밀어낸 ‘리추얼’(의례·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리추얼의 종말’에서 지금을 삶의 다양한 리추얼이 사라진 시대로 규정하고, 그런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것은 생산과 소비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서 제거된 것으로, 악습이나 허례허식과는 다르다. 예컨대, 온 가족의 저녁 식사처럼 ‘함께’ ‘머무름’으로써 안정감과 ‘공동의 느낌’을 갖는 행위다. 즉, 리추얼은 파편화, 개인화된 현대사회에 가장 부족한 ‘공동체적 소통’이다. 리추얼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 바로 종교다. ‘종교의 종언’을 말하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한 달간, 전 세계는 종교를 통해 리추얼의 미덕을 경험한 듯하다. 교황 선종과 선출을 지켜보며, 함께 머물렀고, ‘공동의 느낌’으로 ‘공동체적 소통’을 한 것이다.

리추얼이 현재보다 많고 더 강력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리추얼을 위해 종교를 갖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의 삶을 지탱해 온 리추얼의 부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그것이 교황을 둘러싼 열망에서 반드시 읽어내야 할 우리의 결핍일 것이다. 개인도 사회도, 전 세계도, 여기서부터 새로운 지향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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