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부장

 

한국, 반쯤 삶아진 개구리 신세

올해 성장률 전망은 반토막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는 심각

 

국회 한 해 규제법안만 2830건

규제완화 성장률에 영향 실증

안전망 강화, 노동 정책 추진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지난 2013년과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해 주목을 받았다. 2013년 개구리 보고서 1탄에선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에서 물이 천천히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한국도 심각한 위기가 닥쳐오는데, 느끼지 못한 채 서서히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년 만에 발표된 개구리 보고서 2탄에선 개구리가 이미 반쯤 삶아졌는데도 상황은 그대로니 이제 물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개구리를 냄비 밖으로 내던져 큰 틀에서 뛰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비유는 우리 경제가 점진적으로 악화하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경고하는 데 사용됐다.

맥킨지의 이러한 진단에 반박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최근 나오는 경제 지표 역시 맥킨지의 진단에 딱 부합한다. 국책 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대폭 끌어내렸다. 2월 발표한 전망치를 불과 석 달 만에 절반으로 낮춘 것이다. 또, 올해 1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은 -0.246%로 최근 1분기 성장률을 발표한 19개 나라 가운데 가장 낮았다.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이후 10년마다 2%포인트 잠재성장률이 하락해왔다. 잠재성장률이란 무리한 경기 부양이나 과열 우려 없이 우리 경제 체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경제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이 악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내년 우리 잠재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86년 이후 잠재성장률 2%대 붕괴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하는 주된 원인은 날로 악화하는 인구 구조의 영향을 능가할 정도로 앞으로 치고 나가는 혁신 부문이 출현하지 않고 경제 생태계도 경직돼 생산성이 정체됐기 때문이다. 특히, 과도한 규제는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데에 한몫하고 있다. 제22대 국회에서 지난 1년 동안 발의된 규제 법안만 2830건에 달한다. 환경과 안전을 위한 규제도 있지만, 상당수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자리 창출 능력을 약화시키는 ‘나쁜 규제’로 평가된다. 특히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신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규제 체계는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신성장 산업 규제의 경제적 영향 및 시사점)에 따르면 규제에 발목 잡힌 신성장 산업의 매출 증가율이 전 산업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것 이외에는 성장률 하락 흐름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할 때, 우리 경제에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방안 중 하나가 규제 완화라 하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규제 완화가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국내외 연구에서 실증적으로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규제지수가 1점 상승(규제 완화)할 때 차기 연도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약 10조 원의 경제 효과에 해당한다. 미국에서도 1970∼1980년대 추진된 규제 완화가 항공·운수·통신 등 주요 산업 후생을 크게 증대시켰고 GDP의 7∼9%에 달하는 순후생 증가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KDI도 진입장벽 완화·규제 철폐를 통해 새로운 혁신 기업의 출현과 생산성 향상을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규제 완화가 만능이라 할 순 없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클리퍼드 윈스턴 선임연구원의 ‘네트워크 산업의 규제 완화’에 따르면 규제 완화는 소비자 후생을 크게 늘리지만, 생산자와 근로자에게는 단기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규제 완화는 사회적 안전망 강화, 노동시장 정책 등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

조기 대선 과정에서 각 후보는 저마다의 경제 공약을 하나둘씩 드러내고 있다. 경제 분야 공약 판별 기준은 심플한 편이다. 규제 완화에 얼마나 진심인가. 우리 경제를 살릴 길은 이밖에는 없다.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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