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K 드라마에 유독 많은 먹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왼쪽 사진). 오른쪽은 이 드라마의 촬영지인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선 모습. 연합뉴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왼쪽 사진). 오른쪽은 이 드라마의 촬영지인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선 모습. 연합뉴스

“한국 드라마에는 먹는 장면이 왜 이렇게 많아?”

한국 드라마에 식사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은 각종 기사와 업계 분석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다. 대표적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김밥, ‘이태원 클라쓰’의 순두부찌개, ‘사랑의 불시착’과 ‘별에서 온 그대’의 치맥, 회식 자리의 삼겹살과 소주 등은 한국인의 일상과 정서를 상징하는 대표 음식으로 드라마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장면들이 한류 콘텐츠의 인기와 함께 K-푸드 열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서양에서도 음식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식사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상징성을 가지거나, 중심 배경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무역협회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는 점이라며 이를 K-푸드 열풍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왜 이렇게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할까. 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식구’라는 단어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처럼, 밥은 가족, 공동체, 일상, 감정, 사회적 관계의 중심에 있다. “밥 먹었어?”라는 안부 인사, “밥맛이 없다”는 부정적 감정 표현, “밥그릇 싸움”이라는 경쟁의 은유까지, 한국인의 언어와 사고에는 “밥”이 깊이 스며 있다. 한식의 식사 형태 역시 밥과 국,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모두가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적 문화를 반영한다. 우리에게 밥상은 삶의 중심이고, 드라마 속에서도 밥상은 사건의 기폭제이자 갈등과 화해를 이끄는 장치로 자주 활용된다.

외국인에게 “밥 먹었어?”라고 물으면,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인의 밥에 대한 정서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에 외국인들은 대부분 ‘나에게 냄새가 나나?’ 혹은 ‘밥을 사주려는 건가?’ 정도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문화적 맥락 없이 직역하면 이처럼 의미가 왜곡되기 쉽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에 담긴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접하면 낯설 수밖에 없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한식은 외국인들에게 호감을 얻기 어려웠다. 김은 검은 종이처럼 보였고, 김치나 된장은 강한 냄새로 거부감을 샀다. 밥과 반찬이 한꺼번에 나오는 상차림 역시 코스 요리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생소하게 느꼈다. 이 때문에 식품업계에서는 “한식은 남북통일이 되어야만 시장 규모가 커진다”고 할 만큼 수출 전망에 회의적인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한류 콘텐츠의 인기로 상황은 급변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낯설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한 번쯤 따라 해보고 싶은 대상으로 떠올랐다. 드라마에 등장한 음식점을 방문하고, 좋아하는 배우가 즐기는 음식을 맛보며 직접 만들어 보는 경험을 위해 한국을 찾는 이들도 매년 늘고 있다. 이제는 불닭볶음면, 김치, 라면뿐 아니라 김밥, 치맥, 삼겹살까지 다양한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한류의 인기는 한식의 판매량과 수출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K-푸드 수출은 최근 10년간 두 배 이상 성장했고, 2024년에는 130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제는 반도체가 아닌 ‘면도체’(라면 등 면류 식품)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식품 산업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K-드라마와 K-푸드의 결합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밥을 매개로 한 한국인의 정서와 삶의 방식이 콘텐츠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적 현상이다. ‘밥’이라는 작은 그릇 안에 담긴 이야기가 세계로 퍼져 나가 이제는 한국 산업의 또 다른 ‘밥줄’이 되고 있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K 푸드 인기순위

한식진흥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은 치킨(16.5%), 라면(11.6%), 김치(9.8%), 비빔밥(8.9%), 불고기(6.1%) 순으로 나타났다. 1, 2위를 차지한 치킨과 라면은 각각 미국 남부의 흑인 문화와 일본에서 기원했지만, 창의적인 조리법과 차별화된 소비문화로 K-푸드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양념치킨, 불닭볶음면처럼 단순한 외래 음식이 아닌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세계적인 음식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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