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 중심 독서행사 호응
‘향수의 계보학’ 빈티지 향수 시향
‘정관스님…’ 사찰요리 시식 체험
기존형식 깨고 독자와 접점 확장

상상하던 북토크 자리는 아니었다. 책 대신 향수 매장에서나 볼 법한 시향지가 눈앞에 놓였고, 자리에 모인 20여 명의 참가자는 1950~1990년대에 만들어진 빈티지 향수의 향을 함께 맡기 시작했다. 이곳은 최근 서울 마포구 플랫폼P에서 열린 ‘향수의 계보학’(파이퍼프레스)의 북토크 현장. 빈티지 향수 수집가 ISP(필명)가 책에서 소개한 고전 향수를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건 1980년대 샤넬 No.5, 저건 1970년대 에스티 로더의 프라이빗 컬렉션….” 책으로 취향의 문을 연 독자들에게 최근 북토크는 새로운 경험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파이퍼프레스가 연 이 북토크는 최근 출판계에서 시도되는 ‘경험 중심’ 독서행사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단순히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넘어, 감각을 공유하고 몰입도를 높이는 만큼 출판사는 이 행사의 이름을 ‘독서경험회’라고 지었다. 참가비 3만5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자리는 금세 찼고, 참가자들은 저자의 설명을 꼼꼼히 필기하고 시향지를 모아 바인더에 정리하기도 했다. 딸과 함께 경험회에 참석한 50대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빈티지 향수에 매료돼 딸과 함께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열기는 판매로도 이어졌다. 김하나 파이퍼프레스 대표는 “저자의 전작인 ‘향수 수집가의 향조노트’가 5쇄를 돌파했고, 이번 ‘향수의 계보학’ 역시 출간 두 달 만에 증쇄에 들어갔다”며 “대중적 주제보다 특정한 취향을 겨냥한 책이 오히려 더 깊은 관심을 얻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러한 책들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더 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북토크 현장은 마이크와 테이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 낭독과 질의응답 위주였던 구성에서 벗어나 실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확장 중이다.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요리에세이 ‘정관스님 나의 음식’(윌북)의 북토크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스위스대사관 마당에서 열렸다. 책 집필에 참여한 후남 셀만 작가와 사진가 베로니크 회거가 함께한 이 행사에서는 사찰 요리 명장인 정관스님의 요리법과 함께 책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물론, 정관스님의 시그니처인 연꽃잎차 제조 시연과 시식까지 이어졌다. 이외에도 출판사는 책을 구매한 독자 중 인증사진을 남긴 5명을 선정해 정관스님이 머무는 백양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스님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는 이 ‘연계형 독서 경험’은 책의 인기에 힘을 보탰고, 해당 도서는 현재 5쇄를 돌파하며 1만 부 이상이 판매됐다.
책 한 권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출판 시장에서, 이처럼 독자와 책을 연결하는 다양한 경험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책 편집을 담당한 홍은비 윌북 편집자는 “독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다”며 “그것을 겨냥한 책도 늘어나고 관련해 연계되는 행사들도 책을 제작할 때부터 염두에 두게 된다”고 말했다.
확고해진 취향과 경험에 대한 수요는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도쿄(東京)의 호텔을 현직 건축가가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도쿄 호텔 도감’(윌북)은 최근 온라인 서점 여행 분야 1위에 올랐고, 샌드위치라는 좁은 주제만 다룬 요리책 ‘카페 샌드위치 마스터 클래스’(한스미디어)는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에 반년 넘게 머물고 있다.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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