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7월 6일까지 한국근대미술展
‘없다’던 韓초현실주의 작품 한자리에
‘아류·비주류’ 폄하에도 환상세계 탐구
천경자·이중섭 등 대가로 1부 채우고
2부에선 대세 벗어난 6인 작품 선봬
김종남·김욱규 복잡한 정체성 드러내
‘독창적 표현’ 박광호·김영환·신영헌

꿈, 환상, 그리고 무의식.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표방하며 표현의 혁신을 꾀하는 초현실주의. 1924년 미술평론가 앙드레 브르통의 선언과 함께 세계로 뻗어 나간 이 예술사조의 역사도 어느덧 100년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이를 기리는 전시가 속속 열리고 있다. 민중미술과 추상미술이 중심인 국내 화단에선 그 존재감이 어떨까. 일제강점기 김환기 등 일부가 초현실주의를 시도하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채 비주류로 남았다. 한때는 아예 ‘없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시를 보면 확 눈이 뜨인다. ‘한국의 달리’ ‘한국의 마그리트’가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빈틈을 옹골차게 메우고 있었던 것.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이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한국적 초현실주의’를 깨워낸 전시는 우선 1부에서 천경자, 이중섭 등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시키며 출발한다. 서구와 일본의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초현실주의적 세계’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점차 작품도 작가명도 생소해진다. 한국 근대미술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했다면, 그 생경함이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잠시다. 김욱규, 김종남, 김종하, 신영헌, 김영환, 박광호 6인의 개인전처럼 꾸려진 전시 2부에서 우리는 곧 이들이 창조한 세계에 이끌리게 된다. 전시는 결국 2부가 하이라이트인데, 300점에 달하는 전시를 소화할 때쯤엔, 작가들의 끈기와 의지에 박수를 치게 될 수도. 당대 한국 미술계의 대세에 쫓기지 않고, 모방 혹은 아류라는 불명예를 얻으면서까지 자기만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탐구한 이들 아닌가. 그래서일까. 이들의 작품은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처절하고 기괴하다.
한국명과 일본명이 동시에 써 있는 김종남(마나베 히데오·1914~1986)은 이름도 작품도 단연 호기심을 유발하는 작가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 가서 초현실주의를 접한 김종남은 그 생애도 이목을 끈다. 그는 1950년 마나베 집안의 양자가 돼 성을 바꾸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오랜 세월 한국인임을 숨겼다. 숲속 풀섶에 사람과 동물, 곤충을 정령처럼 숨겨 놓아 감상의 재미를 더한 ‘새들의 산아제한’, 30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곤충, 지폐와 함께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나의 풍경’, 평화로운 달밤의 꽃밭에서 미소 짓는 자화상이 담긴 ‘초록의 감시자들’, 그리고 달밤의 도시 골목에서 목발과 지팡이를 들고 탭댄스를 추는 장애인들을 그린 그림(제목 미상) 등에서 불안한 내면과 해방의 욕구, 복잡한 정체성 등이 읽힌다.

파란 하늘과 네모난 창, 선명한 색감 등 김욱규(1911~1990)의 작품에선 마그리트가 연상된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역시 일본 유학파인 작가는 월남 후 송탄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전력으로 인해 점차 세상과 단절한 채 작업했고, 사후에야 첫 개인전이 열렸다. 작가는 1956년 파리에 가면서 초현실주의를 접했는데, 숲속에서 동물인지 곤충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여러 종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그림 등 초현실적 상상이 짙게 깔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초현실주의를 배워온 화가 김종하(1918~2011)의 작품 세계는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색장갑’이라는 작품. 여러 개의 손이 각기 다른 색을 입고, 조금씩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신비롭고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켜 강렬하게 각인된다.
이어 다음 세대인 박광호, 김영환, 신영헌 등 3명의 작품 세계가 소개된다. 이들은 해방 후 한국의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받았으며 초현실주의 거장으로 꼽히는 막스 에른스트, 달리, 조르조 데 키리코 등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강하다.
박광호(1932~2000)는 달리의 작품 속 오브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중섭에게 그림을 배웠던 김영환(1928~2011)은 미술계와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작업을 이어나갔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과 애니미즘적 세계에 천착했는데, 1960년대 완성한 ‘자화상 풍경’이 그 특징을 잘 담고 있다. 실향민 화가, 종교 화가로 불리는 신영헌(1923~1995)의 작품도 소개된다. 그는 전쟁과 분단으로 얼룩진 한반도, 자본주의로 비인간화한 도시 등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의 풍경을 초현실주의와 결합해 표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시는 오는 7월 6일까지, 관람료는 2000원(덕수궁 입장료 별도).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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