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안 인터뷰 -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

 

트럼프 ‘거래기반’ 양자관계 중시

관세압박도 美의 불만 해결 수단

韓, 대미투자 등으로 협상 나서야

 

보호무역 강화에 韓 단기적 타격

조선·원전 분야 장기적으론 기회

 

車·반도체·철강 피해 우려 산업

국내 제조업 기반 지키는 범위서

조인트 벤처 등으로 美진출 가능

 

27일 문화산업포럼서 기조발표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한미협회 회장)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미·중 패권경쟁 심화 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관세 정책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전략 등을 설명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백동현 기자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한미협회 회장)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미·중 패권경쟁 심화 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관세 정책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전략 등을 설명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백동현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 경제 질서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 심화 속 트럼프 대통령의 고관세 정책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저물고 보호무역주의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한층 강화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중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도 겨냥하고 있는 만큼, 그야말로 초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인공지능(AI)과 제조업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한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국내 대표적인 ‘경제통’이자 ‘미국통’으로 꼽히는 최중경(69) 국제투자협력대사(한미협회 회장)를 만나 최근 글로벌 정세와 한국이 직면한 상황, 위기 극복 방안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최 대사는 기획재정부 1차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에이스 관료’로 이름을 떨쳤다. 오는 27일 열리는 문화산업포럼 1세션의 기조 발표를 맡은 그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복잡한 상황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위험보다는 기회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며 “미국은 주고받을 카드를 마련해 진정성 있게 설득에 임하고, 쉽지는 않지만 경쟁 관계인 중국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AI와 로봇 등 신산업 분야 육성을 위해선 보다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또 한국에만 존재하는 대못 규제를 이른바 ‘빅뱅’ 수준으로 철폐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한국이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한 교역 규모 축소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피해를 입을 위험이 커졌다. 중국의 견제로 대중(對中) 수출이 감소하고 미국 관세를 피해 제3국으로 방향을 튼 중국 제품과의 경쟁이 격화하는 등 단기적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위험보다는 기회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경쟁력이 높은 조선·원자력발전·첨단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기회가 상당 기간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하고 흔들리는 길을 가기도 하겠지만, 중국과의 경쟁 속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고관세를 부과하는 트럼프 대통령 의중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미국도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상 중요한 제조업을 자국 영토 안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사라진 제조업을 부흥시키려면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그 핵심이 고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이다. 또 방위비 분담 규모 증액과 무역수지 균형 등 동맹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은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방위비가 규약에서 요구하는 국내총생산(GDP) 2%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가 미국에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며 3% 나아가 5%까지 올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추월하려는 중국을 확실히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미·중 관계가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함) 상태라는 시각도 있다.”

―미·중이 지난 14일부터 상대국에 대한 고관세를 90일간 일시 유예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한다는 기본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다. 부작용과 반발이 생기니 그걸 ‘스무딩 아웃’(Smoothing out·문제나 장애를 없앰) 하려는 거다. (인하된 관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양국 관계가 상당한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90일 동안만 적용한다는 것 아닌가. 중국을 규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가겠다는 뜻이지 근본적인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미·중 갈등은 중국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태평양 쪽에 해군력을 늘리고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해 미국을 압박하지 않았나. 이에 미국은 공화당 정권이든 민주당 정권이든 대중 규제 강도를 높여왔고, 중국 견제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다. 중국이 계속 ‘어그레시브’한(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 미국으로선 다른 선택권이 없을 것이다.”

―동맹국까지 압박 수위를 높이는 건 자멸적 정책 아닌가.

“자멸적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불만스러운 걸 고치기 위한 차원인 만큼, 잘 조절할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이 주도권을 쥐며 동맹국들과는 적당한 선에서 주고받기를 마무리할 것이다.”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향후 30년간 지속될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30년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WTO나 자유무역협정(FTA) 체제가 당분간 동면 상태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백악관 주인으로 있는 한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거다. 규범에 입각한 다자주의보다는 역학관계·친소관계에 입각한 양자주의가 강조되는 만큼, 주요 국가와의 선린관계 유지가 중요하다. 특히 미국과 각을 세우는 일은 자멸 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당장 우리 주력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분야에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산업이 겹치는 자동차, 반도체, 철강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큰 피해가 우려된다. 고관세가 싫으면 미국에 들어와서 사업하라는 것 아닌가. 미국과 윈윈할 수 있는 협력 방안 마련이 필요한데, 조인트 벤처(JV)를 하나로 꼽을 수 있다. JV 형태로 미국에 진출하면 기술 분야와 판로 개척 협력 등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산업 공동화라는 부정적 영향도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돕더라도 국내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는 범위 안이어야 한다. ‘마더 팩토리’(핵심 생산기지) 전략을 수립해 주요부품·핵심제품은 국내 생산이 이뤄지도록 하고, 주요 연구·개발(R&D) 센터도 한국에 존치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외자 유치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에 투자를 단행하면서 우리 요구도 적절히 하면 미국 측에서 적당한 선을 찾을 것으로 본다.”

―미국 행정부는 경제·산업 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나.

“틀림없이 필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군함 건조나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에 있어 한국이 핵심적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관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전과 조선, 재래식무기 등 분야에서 국제 규격에 맞는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까지 원스톱으로 끝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미국이 전쟁을 할 경우 탱크나 자주포, 단거리·중거리 미사일 수요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무기를 생산하는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평화 시 사업 파트너일 뿐 아니라 전시 무기를 공유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미래 한·미 산업협력’ 세미나에서 기조 발표를 했는데, 헤리티지재단 연구원들도 한국 조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는 평가가 있다.

“천천히 뜯어보면 나름 전략이 있다. 예전엔 규범에 입각한 다자주의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거래를 기초로 한 친소·양자 관계가 중시되고 있다. ‘너희가 잘하면 관세를 달리 부과할 수 있다’ ‘너희는 깎아주지만, 쟤들은 왕창 부과하겠다’ 같은 태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미국 현지 기업들 분위기는 어떤가. 관세 부과 이후 거래가 유보·중단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현지 기업들도 한국은 필수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만 최근 상황이 불안정하니 관세 협상이 종결될 때까지 최대한 관망하는 태도를 보일 거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세 인상으로 인한 가격 상승 부담을 한국 기업에 돌리며 부담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유리한 결과를 이끌기 위해 미국과 어떻게 협상해야 할까.

“우리는 다행히 주고받을 카드가 여러 개 있다. 이 카드를 잘 제시하고 ‘우리는 함께 가야 할 파트너이니 서로 바가지 씌우지 말고 잘해보자’고 진정성 있게 설득해야 한다. 좋은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한국의 대미 투자와 일자리 창출 기여도에 대해 현지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선 조지아주 한 가정집 정원에는 ‘기아를 우리 마을로 데려와 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팻말까지 내걸려 있을 정도다. 미국 여러 주에서 한국 기업 유치에 관심이 많다.”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차기 정부가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일단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대재해처벌법·노란봉투법·주 52시간 근로제·경제력 집중 완화 관련 공정거래법 규제 등 한국에만 있는 대못 규제를 빅뱅 수준으로 다 없애야 한다. 우리 주식시장의 상장기업들 시가총액을 다 더해도 미국 상위 기업 몇 개 더한 것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기업 몸집이 커졌다고 규제하겠다는 것은 폐쇄 경제에서나 가능한 논리다. 상법 개정안의 경우도 연못의 반을 갈라서 한쪽에선 수영하고 다른 한쪽에선 스케이트를 타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거다. AI와 로봇 등 신산업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일본 등과 같이 파격적인 혜택 부여를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려는 혁신 노력에도 힘써야 한다.”

―이웃 국가인 일본,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한·미·일 삼각동맹이 안보동맹 차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세 나라의 위상과 장점 등을 고려했을 때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삼각동맹 틀 안에서 협력관계가 안보뿐 아니라 산업에서도 발전하며 한·일 협력관계는 꾸준히 더 견고해질 것이다.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하지만, 한국만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견제와 신호가 있기 때문에 한·중 관계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관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G8 영입’ 움직임에 대해

 

“韓 경제력·민주주의·문화적 성숙도, 이미 G7 수준 도달”

“한국의 경제력과 민주주의, 문화적 성숙도는 이미 주요 7개국(G7) 수준에 도달했다.”

최중경(69) 국제투자협력대사(한미협회 회장)는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G8 도약 가능성과 관련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대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한국을 G8에 진입시켜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최 대사는 헤리티지재단 영향력이 상당한 점을 고려하면 매우 고무적인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책 수립에 큰 영향력이 있다고 알려진 헤리티지재단에서 한국을 G8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며 “특히 재단 2인자인 데릭 모건 부대표가 직접 집필자로 참여해 더욱 의미가 깊은데, 공화당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컨센서스(의견 일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수 헤리티지재단 출신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에서 중용되고 있는데, 공감대가 없다면 보고서를 이 같은 내용으로 쓸 이유가 없다”며 “한국을 G8에 넣자는 주장은 상당히 무게감이 있으며 고무적인 성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헤리티지재단은 한미동맹 강화가 2기 트럼프 행정부와 새 의회에 분명한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단은 “한국은 지속적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국과 실제적·실질적 행동을 취한 동맹의 가장 좋은 예시 중 하나”라며 “양국 관계는 제도화돼 있고 공통 가치·국민 간 유대·첨단 해법을 추구하는 기업 간 협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또 “한·미 양국이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된 동맹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사는 이와 관련해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정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탈락한다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며 “새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지 말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청년 등 국민을 대상으로 한·미 관계가 얼마나,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한 인식 제고 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1956년 경기 화성 △서울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경영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22회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상임이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지식경제부 장관 △제8회 한미협회 회장(현) △국제투자협력대사(현)

최준영 기자
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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