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선일이 채 2주도 안 남은 지금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하지 못한다면, 필패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 진영은 분열과 궤멸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1강 1중 1약의 3파전 선거 구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다. 보수 후보 모두의 지지율을 합쳐도 오차범위 밖에서 이 후보가 앞선다.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투표 의지마저 잃고 있다.

선거 구도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우매한 계엄, 탄핵에 대한 무반성,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의 불협화음, 특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후보 추대극의 미숙함 등은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하다. 국민의힘은 결과적으로 이 후보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입법 독재에 의한 ‘거대한 음모’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들어 자책골을 넣은 셈이 됐다. 이제 입법·사법·행정 권력 모두를 장악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괴물)이 탄생할 판이다. 여기에 대통령 ‘연임’ 개헌까지 하게 되면, 한국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보수 정치지도자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선거는 어차피 진 것 당권 장악만을 노리는가, 아니면 차기 총선에서 공천받을 궁리만 하는가. 벌써 대선 패배의 책임을 회피할 자기 합리화의 길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결국, 보수 정당은 4분 5분 돼 이재명 독재에 무기력하게 대응할 게 자명하다. 그동안 보수 정당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무수히 강조했지만 모두 헛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백척간두에서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보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분위기는 일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해서 일단 지지 격차를 줄이고 희망의 대동단결로 몰아친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동참하는 단일화를 이루고,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까지도 대규모 합동연설회를 개최한다면 보수 유권자는 물론 중도층까지도 흥미를 가질 것이다. 선거는 바람이다. 약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신바람이 불고 승리의 여신이 찾아올 것이다.

후보 단일화를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비판하지만, 선거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 보수 후보들 간에 정책 차이가 있더라도 단일화는 가능하다. 반대 진영이 승리해 반대 정책이 수립되는 것보다는 보수 유사 정책을 수행하게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정당은 본래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책들을 집합하는 기능을 하고 이들을 적절히 조정해서 일련의 정강정책을 수립한다. 물론 기존의 상호 감정과 차이를 조율·화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교차한 점을 고려하면 적전 분열은 치명적이다. 훌륭한 후보는 자신의 위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긴 안목을 가지고 단일화에 임해야 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는 후보나 유권자들에게는 단일화만이 보수 희망의 촛불이다. 오는 25일 투표용지 인쇄 직전까지 단일화가 이뤄지면, 그 휘발성은 대단할 것이다. 보수 후보들은 보수 유권자들에게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는 희망을 줄 의무가 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칠 수 있는 보수에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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