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경제부 차장
6·3 대통령 선거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선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미래 대세 먹거리 산업으로 떠오른 인공지능(AI) 육성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AI 세계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정부가 모태펀드 등을 만들고 민간자본을 유치해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이에 질세라 AI 유니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민관합동펀드 100조 원을 조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공약은 AI 분야뿐만이 아니다. 이 후보는 양곡관리법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남는 쌀을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인데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추가경정예산도 집권 후 곧바로 편성하겠다고 한다. 김 후보는 공약은 아니지만, 지난 19일 대한노인회를 찾은 자리에서 “아기를 낳으면 1억 원씩 무조건 주는 정책을 정책위의장에게 한번 검토를 해보자고 하니 ‘1년에 한 25조 원만 있으면 할 것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나랏돈을 대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세금을 깎아주는 방안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김 후보의 종합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이나 이 후보의 교육비·월세 등 세액공제 확대는 사실상 감세 정책이다. 문제는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이다. 인구 감소·고령화와 저성장으로 법인세를 비롯해 나라 곳간의 근간인 세수 기반은 전례 없이 취약해져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대로 끌어내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국내외 예측기관들은 노동·자본 등을 최대한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 수준인 잠재성장률 전망치마저 1%대로 낮추고 있고 향후 ‘역성장’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6.1%에 달한다. 2016년만 해도 34.2%였는데 8년여 만에 10%포인트 넘게 수직 상승했다.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 비율은 2040년 80%, 2050년 100%를 넘어서고 2072년이면 17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채무 비율이 100∼200%에 달하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 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비율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올 1분기 -61조3000억 원으로 3월 말 누계로는 역대 두 번째로 적자 폭이 컸던 관리재정수지는 13조8000억 원의 추경 요인까지 반영할 경우 최대치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명확한 재원 조달이나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 없는 대선 후보들의 ‘퍼주기 공약’은 우려를 키우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가 약 2500조 원임을 고려하면 국가채무가 25조 원만 더 늘어도 GDP 대비 채무 비율이 1%포인트 치솟으며 순식간에 50%, 60%를 돌파할 수 있다. 최근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108년 만에 처음 Aaa에서 Aa1으로 낮추며 △급격히 불어난 국가부채 △지출 확대와 감세 정책으로 인한 지속적인 재정 적자 등을 강등 배경으로 들었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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