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에리크 사티 ‘6개의 그노시엔’

 

8년에 걸친 작업끝 만들어

反예술주의 미학 도드라져

 

19세기말 작곡 못믿을 만큼

현대적·감각적 멜로디 넘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프랑스의 작곡가 에리크 사티(1866~1925)는 클래식 음악사에 있어 가장 자유로웠고 전위적이었던,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음악가라 할 만하다. 그가 남긴 몇몇 대표작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남달랐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데 ‘비쩍 마른 태아’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짜증’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발한 작명 센스 덕에 그는 종종 ‘세기말의 반항아’ ‘괴짜 작곡가’ 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결코 그의 음악들마저 치기 어린 일탈의 결과라 여겨선 안 된다. 그는 소위 ‘반(反) 예술주의’를 선언하며 독자적인 미학을 기반으로 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로 현대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도무지 19세기 말에 작곡되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특징인데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6개의 그노시엔을 꼽을 수 있다.

사티는 13세이던 1879년 서유럽 음악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다. 그러나 여느 천재 작곡가들과는 달리 어린 시절 그는 이렇다 할 만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모든 기록물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엘리트적인 면모는커녕 오히려 ‘게으른 학생’이란 교수의 냉소적인 평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는 제 발로 학교를 나와 밤무대를 전전했는데 21세이던 1887년부터 검은 고양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바레 ‘르 샤 누아(Le chat noir)’의 피아니스트로 전업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카바레는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곳으로 단순히 술을 파는 곳이 아닌 당대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사티는 이곳에서 자신의 실험적인 작품 연주활동뿐만 아니라 시인, 배우, 정치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맺을 수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은 그의 음악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카바레 피아니스트 시절 당시인 23세에 작곡을 시작해 무려 8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된 곡이 바로 그 유명한 6개의 그노시엔으로, 그노시엔은 그리스 남부에 자리한 섬인 ‘크레타’를 의미하는데 ‘크레타 사람들’ 혹은 ‘크레타 사람들의 춤’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엔 이국적인 제목 외에도 당시는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도 상당히 파격적인 면들이 있는데 첫째로 마딧줄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악보에서의 마디마디는 음악의 박자를 나누기 위한 것인데 그노시엔에는 오직 음정만이 나열되었을 뿐 그 어떤 마디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풀어 말하자면 음악의 도입이나 종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시작과 끝 그리고 음악의 빠르기마저 연주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긴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독특한 음악 지시어들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음악 지시어란 악보의 앞머리에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이렇게 연주하시오’란 일종의 주문 내지는 당부 같은 것인데 사티는 안단테나 칸타빌레들과 같은 이탈리아어로 된 일반적인 지시어 대신 모두 프랑스어로 대체했다. 1곡은 느리다는 의미의 Lent, 2곡 Avec etonnement(놀라움을 가지고), 제3곡 Lent, 제4곡 Lent, 제5곡 Modere(절제하듯), 제6곡 Avec conviction et avec une tristesse rigoureuse(확신과 절대적 슬픔을 가지고)인데 이외에도 악보의 중간중간마다 ‘매우 기름지게’ ‘혀끝으로’ ‘구멍을 파듯이’ 등의 직관적이고도 괴짜 같은 별도의 지시어를 덧붙여 놓았다. 1곡, 2곡, 3곡들로 구성해 얼핏 작품의 규모나 내용 등이 거창해 보일 수 있으나 1곡은 15초 내외, 3곡은 10초가량의 매우 간단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저자

■ 추천곡 들여다보기

에리크 사티 ‘6개의 그노시엔’은 1889년부터 1897년까지 무려 8년에 걸쳐 작곡된 곡으로 대표작이자 매체의 광고음악으로도 등장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다. 음악의 마디와 강약 빠르기를 해체함으로써 연주자에게 보다 자유로운 연주와 해석을 가능케 한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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