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범철의 Deep Read - 한국 ‘대중국 항모’론
‘전략적 유연성’ 내세워 트럼프2기 국방전략 수용… 주한미군 지상군 위상 수호 의지도
동맹의무·한중관계 관리 과제로… 새 정부, 진실의 순간 회피 말고 대외정책 원칙 지켜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5일 미국 육군협회 태평양지상군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맹이자,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또는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고 발언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브런슨 사령관의 ‘한국=대중국 항모’ 언급은 계산된 행보로 봐야 한다. 한반도에서 북한 위협 억제를 주목적으로 하는 주한미군이 중국 견제를 위해 다용도로 활용돼야 한다는 의미이며, 한국에 곧 출범할 신정부에 던지는 전략적 메시지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반도에 지상군 주둔이 필요한가’라는 미국 국방부 핵심 인사들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 국방전략 변화
과거에는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부르곤 했다. 북한의 남침에 대해 미국이 약속한 대규모 전시 증원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과 공세적 대외 행보는 미국 대외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낳았다. 북한의 위협은 한국의 첨단 전력과 미국의 확장억제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반면, 중국의 위협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보유하고 있는 전력만으로 부족하다는 위기의식을 표출시키게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부터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했고,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미국의 대중국 억제 전략을 구체화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국방전략서(National Defense Strategy)’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를 제시했는데, 그 핵심 내용은 한국·일본·호주 등과 같은 미국의 역내 동맹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2기의 국방전략서 작성을 위한 임시 지침 역시 중국을 제1의 위협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대중국 억제에도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은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다만 그간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한국의 입장을 배려해 가급적 수위를 낮춰 에둘러 표현해 왔는데, 점차 공개적으로 의사를 밝히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주한미군의 생존전략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 작전에 활용되는 것을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한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벗어나 대만해협이나 기타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같은 개념이다. 물론 전략적 유연성이 곧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선제적으로 대비 태세를 갖춤으로써 중국이 군사적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주한미군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지 못하는 주한미군은 미국 국내적으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 효율화를 위해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현재 44명인 4성 장군을 20% 감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에 지상군은 필요한 것인지, 3만 명도 안 되는 병력에 4성 장군을 두는 것은 낭비가 아닌지 검토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대중국 항모’론은 미군 조직 개편 과정에서 주한미군 지상군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주한미군이 북한 문제에만 관여한다고 가정한다면 주한미군의 규모 축소나, 향후 주한미군사령관을 3성 장군으로 보임할 가능성도 있다. ‘계급이 대수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4성 장군인 현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을 겸하며 미국 합동참모본부에 직접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전시사령부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진실의 순간
만일 주한미군사령관이 3성 장군으로 격하된다면 태평양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고, 그 후 합동참모본부로 지휘 계선이 이어질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 유사시 신속한 의사결정과 전시 증원에 제한이 따를 수 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브런슨 사령관이 주한미군의 가치를 높이고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 문제를 공론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대중 억제력 구축과 주한미군의 역할이라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미동맹은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는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권리로 인식한다. 한반도에서 북의 무력 남침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조약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이,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무력 공격이 발생하면 한국도 조약상 의무를 부담하게 돼 있다.
문제는 예상되는 중국의 반응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중국은 역내 평화를 해치는 일로 비난할 것이고, 주한미군 기지 역시 중국의 타격 범위 내에 있다고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겨냥한 경제적 보복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이기에 그간 미국도 언급을 아껴 왔으나,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신정부가 직면할 도전
6월 출범할 새 정부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미국 국방전략의 변화를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미국의 자율성도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군의 독자적인 역할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건에 기반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완수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가질 수 없는 핵 억제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확장억제 협력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한반도에서 한국군의 역할 확대는 트럼프 행정부도 환영할 것이기에 일부 영역에서 한·미 간 이견이 존재한다 해도 그 차를 좁혀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중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커지겠지만 일일이 대응하거나 저자세를 견지해서는 안 된다. 평화 애호국으로서 주변국을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대외정책의 방향성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한·중 관계 악화를 거시적 차원에서 예방해야 한다. 특히 우리 군은 지역 문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히고 대만 유사시에도 한반도에서 대북 억제에 주력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면, 한·중 간에도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국방부 차관
■ 용어 설명
‘태평양지상군’심포지엄은 미국 육군협회가 주최하는 연례 심포지엄 및 박람회. 인도태평양 지역 지상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춤. 올해 5월 13∼1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됨.
‘국방전략서(NDS)’는 미국 국방부에서 작성하는 국방 분야 최상위 문서. 국가안보전략(NSS)을 군사계획, 군사전략, 무력태세, 무력현대화 등 광범위한 군사 지침으로 정교화함.
■ 세줄 요약
미 국방전략 변화: 중국의 부상과 공세적 대외 행보는 미국 대외전략의 중대한 변화를 낳아. 한국을 중국 견제를 위한 항공모함에 비유하며 주한미군을 중국 억제에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은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
주한미군의 생존전략: 브런슨 사령관의 ‘한국=대중국 항모’ 언급은 계산된 행보이며 전략적 유연성을 내세워 주한미군의 생존전략을 찾는 것. 미군 조직 개편 과정에서 주한미군 지상군의 위상을 지키려는 의도도.
새 정부가 직면할 도전: 대중 항모론은 한국에서 곧 출범할 신정부에 던지는 전략적 메시지. 새 정부는 진실의 순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며, 미 국방전략의 변화를 이해하고 한미동맹에 기반해 한·중 관계를 관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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