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민주평통 사무처장

 

지지층 피해 더 키운 관세전쟁

MAGA 외치지만 점차 현실화

시진핑은 역공, 푸틴은 버티기

 

한국은 정책 디테일 더욱 중요

그럴듯한 말에 휘둘리면 쇠망

덜 무능한 후보라도 선택해야

서부 개척시대 갱들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총을 난사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새 보안관은 갱들처럼 총을 마구 쏘며 부임했다. 취임 100일을 지나며 복잡한 마을 정세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새 보안관에 잔뜩 긴장했지만, 구체적인 마을 회생 대책에 기대도 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건에는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일부 물자 수입이 줄어들어 지출이 축소됐으나, 필수 품목에 붙은 관세로 물가가 급등했다. 심지어 아이들 옷과 인형까지 가격이 올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붉은색 마가(MAGA) 모자는 역설적으로 중국산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절대로 공급할 수 없는 19.99달러의 가격은 신임 보안관의 딜레마를 상징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인형 한두 개 없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관세 전쟁의 1차 피해자는 그동안 마가주의를 지지했던 히스패닉과 흑인 등 저소득층이다. 소득은 일정한데 관세로 수입 물가가 오른다.

우선, 최고가를 부르며 단계적으로 낮춰 가는 트럼프의 ‘우선 지르기’ 방식도 익숙해졌다. 상호관세 부과 40일 만에 미·중 간 90일 관세 유예가 합의됐다. 대중(對中) 관세율을 145%에서 30%로, 중국은 125%에서 10%로 각각 115%P 낮추기로 합의했다. 협상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서 ‘엄청난 진전’인 양 포장하는 선전 차원의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자신들의 승리라고 선언했고, 미 주류 언론들은 미국의 패배라고 평가했다. 중국산 펜타닐의 북아메리카 유통을 봉쇄한 게 유일한 성과라는 지적이다. 고관세 부과는 게임 당사자 모두가 피해를 보는 치킨게임이라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시작 전부터 총을 여기저기 난사하고 조준하니 파편이 자기 쪽으로 튀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이 쉽지 않지만 ‘죽고 사는 문제’인 안보 역시 간단치 않다. 트럼프는 이달 초 플로리다에서 열린 기부자 모임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로 점점 좌절감을 느끼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고 한다. ‘취임 후 24시간 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공언했던 대통령으로서 현실적 한계를 인식했다. 중동 가자전쟁 중재도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진정성은 미심쩍지만, 유세 기간 그의 호언장담과 비교할 때 그의 좌절감은 이해가 간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트럼프의 머리 위에서 밀당을 한다. 미 의회 전문지 ‘롤콜’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선 기간 ‘전쟁 종식’에 관한 발언을 최소 53번이나 했다.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지속적인 전쟁 종식 발언으로 푸틴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국제정치와 비즈니스의 해법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절대로 같지 않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동맹이나 약소국들의 팔을 비틀어 실리를 얻는 것은 비즈니스와 유사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미국이 그들보다 카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같은 강대국 스트롱맨들과의 협상은 단순하지 않다. 트럼프는 저서들에서 최고가를 부르고 나중에 절충하며,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말고 밀고 나가라는 등 악마의 변호사 로이 콘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임기 조절이 가능한 중국, 러시아 같은 슈퍼 파워들은 그런 협상 방식에 이골이 나 있다. 협상이 파국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선거를 걱정하지 않는 독재자들은 미국의 힘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침대 축구’ 전략을 구사한다. 이미 트럼프 1기(2016∼2020)에서 변칙을 경험했기 때문에 시간이 누구 편인지 안다. 단임 지도자의 취약점을 알고 있는 악당들은 시간 끌기와 틈새를 노려 트럼프의 공격 축구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허장성세와 과장된 행동은 100일 만에 천천히 실체가 나타나고 있다. 정책 수행의 디테일과 현장의 실무적인 노력이 보완돼야 한다. 우리 대선이 12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공약과 구호는 유권자의 눈과 귀를 잡는 유인책이지만, 절대 그대로 될 수 없다. 국가 발전과 민생 개선이라는 실질적인 작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덜 무능한 지도자를 선출한다면 천만다행이다. 태평양 건너 큰 나라의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100여 일 동안 일어난 일을 보며 드는 상념이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민주평통 사무처장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민주평통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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