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서재


새 책을 손에 들게 되면 으레 나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단박에 들어오는 문장을 좇는다. 오늘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턱 하니 펼쳤을 때 139쪽이 나왔고 거기 나는 이렇게 붙들렸다. “1979년 1월 1일 월요일, 나는 멋진 각오를 한다. 매일 누군가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소피 칼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걸 시인 장혜령이 하고 있는 책이다.
새 책을 손에 쥐게 되면 두말할 것 없이 나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즉시로 눈에 박히는 단어를 줍는다. 오늘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탁 하니 펼쳤을 때 190쪽이 나왔고 거기서 나는 이걸 주워들었다. ‘고니’. 고니 몰랐나 고니. 고니 처음 듣나 고니. 기억 다음에 니은이고 둘 다 받침 없어 미끈한데 “날개 다친 흰 고니와 병원 침대에 누운 엄마를 이미지로 연결하고” 있는 김혜순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걸 시인 장혜령이 하고 있는 책이다.
어떤 책인지 가늠이 좀 되시려나. 여성 작가 9인의 ‘뒤’를 따라가며 그들의 전작을 넘나드는 가운데 그와 동시에 여성 작가 나의 ‘앞’을 주시하며 나의 내면을 끌어들인 저자 장혜령이 이를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여 꿰어나간 배틀 되시겠다. 고로 도합 10인의 여성 작가가 제 고유의 영역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다해 제멋대로 노래하는 데서 어떤 변종이 된, 그야말로 ‘이기’를 부려 ‘기이’를 가지게 된, 이야말로 ‘다르다’는 미침이 결국엔 ‘닿는다’는 미침에 도달한 아주 독특한 책 되시겠다.
차학경, 아니 에르노, 한강, 다와다 요코, 소피 칼, 올가 토카르추크, 김혜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함께 직조(texere)해나간 장혜령의 텍스트(text)는 우리를 작게는 ‘읽는 사람’으로부터 크게는 ‘다 읽고 더 쓰는 사람’에로 확장시켜 나가는 데 있어 뜻밖에 아주 감각적인 센서 등이다. 장마다 빈번하게 끼어들어 불을 켜는 소제목을 보라. “그 잉크를 지금 흐르게 하라”고 하는 것처럼 그것은 친절하지 않고 다만 그것은 자유롭다. 하단마다 빈삭하게 주저앉아 불을 켜는 각주를 보라. “오래전 당신도 그런 적이 있었으리라”고 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 자체로 그물이고 다만 그것은 구멍일 때도 잦다.
하고 많은 것 가운데 왜 하필 크루아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겹겹의 빵을 뜯어 먹으며 이 책을 다 읽었다. 저간에 몇 개의 크루아상을 먹어 치웠는지 그 수를 세는 일은 중요하지 않으리니 나는 그저 내 발밑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빵가루를 한데로 쓸어모으는 손동작이나 반복하고 있다. 참, 이 책의 제목은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다. 빵 아니다. 모래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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