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국인이나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출국할 때 내야 하는 ‘출국납부금’이 있습니다. 1997년부터 출국하는 내국인에게 걷기 시작했는데, 2004년부터는 외국인에게도 받고 있습니다. 국민 대부분은 이런 부담금이 있다는 걸 잘 모릅니다. 세금에 포함돼 항공 운임과 함께 결제되기 때문이지요.
출국납부금은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주요 재원입니다. 이 기금으로 외국인 유치를 지원하고, 관광홍보 영상을 만들고, 안내서비스를 개선합니다. 근로자 휴가지원사업도, 캠페인 ‘여행가는 달’도, 관광주민사업체 발굴과 지원도 이 돈으로 합니다. 전체 관광개발진흥기금의 40% 정도를 출국납부금과 카지노 부담금(카지노 총매출의 10%)으로 충당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정부는 뜬금없이 출국납부금 인하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출국납부금 1만 원을 7000원으로 내리고, 면제 대상을 만 2세에서 만 12세로 확대한 것이지요. 다른 나라들이 우리 출국납부금과 비슷한 입국세, 숙박세, 관광세 등을 앞다퉈 신설하거나 인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관광 인프라 투자나 과잉관광 문제 해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관광 관련 세금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1000엔(약 9550원)인 출국세를 5000엔(약 4만7800원)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태국도 연내에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에게 1인당 300밧(1만2600원)을 받을 계획입니다. 인도네시아도 15만 루피아(1만2700원)의 관광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고,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은 숙박관광객의 관광세를 7.5유로(1만1700원)에서 15유로로 2배 인상했습니다.
정부는 출국납부금 인하가 ‘국민의 경제 부담 경감조치’라며 한껏 생색을 냈습니다만, 항공료에 합쳐서 받는 출국납부금 인하를 체감한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항공사 유류할증료가 조금만 올라도 깎아준 3000원 효과는 흔적도 없이 상쇄돼버리는데 말입니다.
출국납부금 인하로 당장 문제가 생긴 건, 관광진흥개발기금 수입의 차질입니다. 작년에 정부가 출국납부금 인하조치로 ‘국민 부담경감액이 1000억 원’이라며 자랑했으니 딱 그만큼의 수입결손이 있었습니다. 수입 감소는 장기적 재원 축소로 이어집니다. 관광사업 예산이 줄었고, 관광정책의 대응역량도 떨어졌습니다. 선심과 생색의 계산서는 돌아옵니다. 한쪽에서 깎아주면 어디에선가 채워 넣어야 하니까요.
박경일 전임기자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