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정치 경제에 밀려난 문화 공약
‘문화 도구화’ 관행과 무관심
K-콘텐츠 산업 중심 아쉬움
요원한 문화재정 2% 정책 목표
‘글로벌 톱’보다 모두의 문화
문화적인 삶이 기본권인 시대
역시 이번 대선에서도 문화 공약은 후순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내놓긴 했지만, 정치·경제 이슈에 밀려 관심 밖으로 떠내려갔다. 두 후보는 21일 동시에 1300만 반려인구를 겨냥한 반려동물 공약으로 반짝 눈길을 끌었다. 주목도와 화제성에서 문화 공약은 반려동물 공약에도 못 미친 셈이다.
12·3 계엄 이후 반 토막 난 문학시장이 말하듯 문화를 앞세우기에 너무 혼란한 시대 탓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에 대한 한국 정치의 오랜 무관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 정치는 일정 부분 문화를 ‘도구’로 취급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정치적 이념에 따라 유불리를 판단해 그 사달이 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다. 덕분에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생겼지만, 뒤이은 두 정권 모두 이를 제대로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함께 대통령 해외순방, 외국 국빈방문 혹은 국가 행사에 K-팝·한류 스타를 쉽게 동원하는 관례도 이 같은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고 한류 스타가 대통령 뒤에 어정쩡하게 서고, 세계적 K-팝 그룹이 대통령 순방 길에 합류해 무대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한 국회의원은 잼버리 대회를 살리기 위해 군 복무 중인 방탄소년단을 불러와야 한다고 했다가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 선두인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5, 문화 강국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2030년까지 시장 규모 300조 원, 문화 수출 50조 원을 목표로 정책금융, 세제 혜택 등 전방위적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새롭다기보다 현재 문화정책을 종합 정리한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화정책’은 ‘K-콘텐츠 산업 지원’과 등식화되고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영화 ‘쥬라기 공원’ 흥행 수입이 자동차 150만 대 수출과 맞먹는다며 문화 산업 가능성을 제기한 게 출발점이다. 그 뒤 한류 붐이 일고 2010년 중반부터 한국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 매출·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자 문화 강국은 정부의 단골 목표가 됐다. 하지만 ‘문화’를 ‘산업’ 측면으로만 집중하는 정책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 외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때문이다. 또, K-콘텐츠는 한국 정부가 주도해 만든 상품이라는 국제사회의 만연한 오해를 고려하면 전략적으로도 이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정책은 예술가의 창작, 국민의 문화생활 그리고 문화 산업이라는 세 기둥이 단단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 예술가는 창작활동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국민은 일상에서 풍요롭게 문화를 누리는, 이 두 토대 위에 K-콘텐츠 산업도 활기를 띠고 글로벌 경쟁력도 지속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1조5000억 원의 수익을 내고 한국 배우 몸값이 편당 20억 원까지 올랐다고 우리 문화가 풍성해졌다 할 수 있는가. 물론 낙수효과는 크지만 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진심으로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정부 예산 673조3000억 원 중 7조672억 원으로 1.05%에 불과하다. 문화 예산은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으로 정부 예산의 1%를 넘은 뒤 박근혜 정부는 ‘문화 재정 2%’를 목표로 세웠으나 제자리다. 게다가 문체부 예산 중에서 체육·관광을 뺀 순수문화 부문은 3조6557억 원으로 0.53%에 불과하다. ‘소프트파워 빅5’ ‘문화 강국’을 내세우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여가·문화·종교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25%)에 못 미치는 0.99%로 32개국 중 24위다.
이쯤에서 문화 선진국의 문화 캐치프레이즈를 돌아본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화부를 만든 프랑스의 표어는 ‘모두를 위한 문화’이다. 독일은 2021년 ‘모든 다양성 속 문화’를 목표로 내걸고 ‘클래식부터 만화책까지, 독일어 방언부터 음반가게까지 모든 사람과 함께 문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도 지금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해결하고 문화와 문화적인 삶이 기본권이 되는,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어야 한다. 그땐 아마 문화공약이 앞 순위에 오를 것이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1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