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1987년 민주화 이끌었던 세대
은퇴 시기에 다시 독재를 걱정
권력자 善意에 기대는 건 위험
김문수에겐 3가지 기적 필요
시일 촉박해 실현가능성 의문
위대한 국민의 각성 절실한 때
은퇴할 나이가 되어, 21세기도 4분의 1이나 지난 시점에 다시 ‘독재’를 걱정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필자 세대(필자는 1961년생, 79학번)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서 은퇴하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생애를 살고 있다. 보릿고개와 한강의 기적을 함께했고, 박정희·전두환에서 김영삼·김대중을 거치며 점진적 민주화 혁명도 이뤄냈다. 유신·신군부 시기에 민주주의를 외치려면 인생을, 때로는 목숨도 걸어야 했다. 1987년 민주화 이전엔 ‘운동’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필자 세대는 이철·유인태 같은 민청학련 선배들과 김근태·장기표·이태복 같은 1980년대 투사들을 경외의 마음으로 대했다. 현장 노동운동 쪽에서는 김문수가 전설이었다.
필자 세대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지만, 민주주의 제도가 무너져선 안 된다는 데는 일치한다. 자식 세대가 다시 민주화 투쟁에 나서게 할 순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직까지 차지할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없었으면 어떤 법률이 시행되고 있을지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민주주의 원칙이지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독재의 도구다. 권력 분산 없이 권력자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김문수가 과거 자신이 맞섰던 정권의 연장선에 있는 정당의 후보로 나서고, 민주화 세력에 뿌리를 둔 정당의 후보인 이재명을 향해 ‘독재’를 경고해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래도 현실은 냉엄하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 역전 만루 홈런을 기대하는 것은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국민의힘은 너무 많은 자책점을 내줬다. 상대가 잘해서가 아니라 투수의 폭투 때문이어서 더 뼈아플 것이다.
열세인 김문수가 판세를 뒤집으려면 최소한 3가지의 기적이 필요하다. 첫째는 윤석열 및 그 세력과의 명료한 결별이다. 윤석열은 뒤늦게 탈당하면서도 김문수를 응원했고, 지금도 주위를 빙빙 돈다. 부정선거 영화 관람 등 결과적으로 이재명을 돕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계엄 타이밍 등을 보면 그런 음모론도 퍼질 만하다. 김 후보 역시 윤석열을 매정하게 끊어내지 못했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노리는 ‘육참골단’ 없이는 승리를 추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둘째는 범보수 세력의 온전한 빅텐트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선거일 6일 전에 이뤄져 승리했던 일도 있는 만큼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당시에도 완주 선언, 단일화 효과 등의 논란이 있었다. 다만 지금 분명한 것은, 김문수·이준석 단일화 없이는 필패한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이회창·김대중·이인제 3파전이었던 1997년 대선과 흡사한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도 대통령(김영삼)이 여당(이회창) 아닌 야당(김대중)을 돕는다는 반목이 심각했다.
셋째는 우세에 도취한 이재명과 민주당의 오만한 폭주다. 민주당이 집권 직후 처리하겠다며 쏟아내는 법안들, 방탄유리와 방탄조끼, 이른바 ‘호텔 경제학’과 “셰셰” 발언 우기기 등을 국민은 곱게 보지 않는다. 이재명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과거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 “연대와 상생, 배려로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서 ‘빛의 혁명’을 완수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흘 뒤 대법원이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한 판결에 대해 “사법 쿠데타” “2차·3차 내란 시도”라고 규정했다. 입법권과 대통령 권한이 결합해 공격하면 사법권 독립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앞의 세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야 김문수의 역전이 가능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국민은 필요할 때마다 위대한 선택을 했다. 지금도 선출된 권력에 의한 연성 독재가 러시아·베네수엘라·헝가리·튀르키예 등에서 자행되고 있다. 국민의 각성이 절실한 때다. 성경은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한다’(고린도후서 11장 14절)라며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한다. 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내부의 교만·거짓말·증오를 비판하면서 자주 인용한 말이지만, 민주주의 가면을 쓴 독재라는 악마는 국민 모두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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