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6·3대선 후반전 독법
이, 탄핵 반사이익 누리며 초반부터 대량득점… 사법장악·호텔경제론 등 악재로 상승세 제동
김, 뒤늦게 SNS 타고 ‘파파미’ 확산되며 이슈 주도… ‘투표를 통한 단일화’로 구도 반전 노려

선거는 인물·이슈·구도라는 3요소로 승부가 결정된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인물 경쟁력이 새 이슈를 만들고, 이는 구도의 변화를 가져온다. 6·3대선을 1주일 앞둔 현재의 판세는 선두 이재명을 김문수가 맹렬히 추격하는 양상이다.
◇인물
대선 후보에 대한 인물 평가 4대 기준은 리더십(leadership), 업무능력(competence), 진실성(integrity), 공감능력(empathy)이다. 이를 다시 줄이면 업무능력과 진실성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도널드 킨더).
업무능력은 이재명과 김문수의 경기지사 시절 성과를 중심으로 비교가 가능하다. 경제·산업 전략에서 이재명은 대장동 공공개발, 지역화폐 활성화, 청년기본소득 도입 등 지역경제 선순환 구축에 집중해 성과를 올렸다. 김문수는 첨단산업 중심의 경제지도 그리기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이는 판교·파주 산업벨트 구축, 삼성반도체 평택공장 유치를 통한 수십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복지정책을 보면 이재명은 보편복지 철학에 따라 무상교복·산후조리비 지원, 공공의료 강화 등 청년과 서민을 위한 복지 확대에 역점을 뒀다. 김문수는 무한돌봄센터 운영,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기반 교통복지 등을 통해 기초생활 안정 중심의 행정을 일궜다. 두 사람의 행정 철학이나 스타일을 보면 이재명의 재정 건전성 기반 추진력과 김문수의 대형 민간투자 유치 실행력이 확실히 대비된다. 이재명은 90%를 넘는 공약 이행률을 자랑했고, 김문수는 임기 도중이나 이후로도 단 한 건의 부정부패 논란 없이 깨끗한 도정을 이끈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소년공 출신의 이재명은 검정고시로 초·중·고 과정을 마쳤다. 법대에 진학 후 변호사가 되고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쳐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한 후 원내 제1당의 대표와 대선 후보가 됐다. ‘황야의 일필랑’ 같은 존재로 외곽에서 중앙으로 돌진해 종중 안방을 차지한 입신양명 스토리는 그의 리더십과 업무역량을 평가할 때 두고두고 인용된다.
김문수는 서울대 상대 재학 도중 노동현장에 투신해 20년간 진보적 노동운동을 해온 ‘운동권의 전설’(심상정 표현)이다. 제적과 옥살이 등 환난을 거치면서 2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김문수는 보수 정치인으로 거듭나 국회의원 세 번과 도지사 두 번, 장관을 지냈으며 ‘영혼이 투명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고 급기야 대선 후보가 된 서사의 주인공이다.
이재명은 정치권 입문 후 포퓰리스트적 특성과 최근까지 진행된 사법 리스크로 진실성의 문제를 안게 된 데 반해, 김문수는 과거 말없이 행했던 헌신과 봉사의 스토리가 뒤늦게 베일을 벗고 SNS를 통해 맹렬히 확산 중이다.

◇이슈
김문수는 노동운동 시절 공안당국의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지들의 이름과 거처를 불지 않았다는 이야기, 오랜 공직생활에도 재산이라고는 10억 원 아파트 한 채가 모두라는 사실, 경기지사 퇴임 후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서 맨발로 화장실을 청소했던 한 장의 사진, 김연아 선수 무명 시절부터 후원금을 지급해왔던 스토리 등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면서 화제를 낳고 있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상황실장 장동혁 의원은 기자와 만나 “김문수에 대한 미담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면서 “그의 ‘파파미(파도 파도 미담)’ 화제를 앞세워 대선 승리를 위한 막판 ‘판갈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거전 후반 들어 급부상한 인물 경쟁력을 앞세워 이슈 주도력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터진 게 이번 선거판 최대 이슈가 된 이재명의 ‘호텔경제론’이다.
호텔경제학의 기원은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밥 맥티어가 포브스지에 기고한 글(‘The Tale of the $100 Bill’, 2011년 11월 29일자)이다. 원본에는 부가가치 없는 돈의 과장된 흐름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이를 이재명이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없이도 경제가 돌아간다는 얘기로 둔갑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선대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8년 전에 제기했다가 비판받았던 소재를 이번 대선 토론회에서, 그것도 두 차례나 연달아 꺼낼 필요는 없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는 “이번 호텔경제학 제기는 아마도 문재인 정부 시절 전 국민 코로나 지원금으로 21대 총선에서 압승했던 기억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전의 초기부터 내내 논란이 된 이슈로 민주당의 사법 장악 행태를 빼놓을 수 없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2심 무죄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심과 관련해 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과 특검, 청문회 등을 추진하고 대법관 대폭 증원을 추진하는 등 입법·행정에 이어 사법까지 3권을 장악하려는 행보에 민심이 회초리를 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커피 원가 120원, 거북섬 논란 등 실언과 실수가 이어지면서 이재명의 이슈 주도력이 떨어졌다. 국민의힘에 대한 ‘탄핵 정당·내란 응징’ 공세로 선거전 초반부터 중반까지 쟁여놓았던 대량 득점을 최근 며칠 사이 까먹기 시작한 것이다.
◇구도
선거 3요소 중 마지막은 구도다. 한국과 같은 대선 환경에서 선거전 초기에 형성된 구도는 인물의 부침과 이슈 흐름 속에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대통령 연임제에 견고한 양당제가 정착한 미국에서는 인물이나 이슈가 구도보다 훨씬 중요하지만, 대통령 단임제에 다자구도로 흐르기 마련인 한국 대선에서는 막판 구도가 선거전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곤 한다.
15대(1997년) 대선은 김대중과 김종필이 DJP 단일화를 일궜고 일사불란한 대오를 형성해 김대중이 1.53%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DJP는 이념적으로는 진보와 보수,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충청이 결합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16대(2002년) 대선에서는 진보 노무현과 보수 정몽준이 진통 끝에 단일화를 이뤄 3자 구도를 양자구도로 바꿨고, 노무현의 승리로 귀결됐다.
17대(2007년) 대선은 이명박 대세론이 시종일관 선거전을 관철했고 결국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18대(2012년) 대선은 전형적인 양자구도였다. 산업화세력을 등에 업은 박근혜가 민주화세력의 지원을 받은 문재인을 3.53%포인트 차로 눌렀고, 선거전에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총결집됐다.
19대(2017년) 대선은 박근혜 탄핵 이후 촛불 대 적폐 구도가 선거판을 점령한 상황에서 문재인이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간의 5자 구도에서 여유 있게 당선됐다. 20대(2022년) 대선에서도 구도가 중요했다. 이재명이 당선되는 최선의 전략은 3자 구도를 유지하면서 4050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이 선거 투표일 6일 전에 안철수와의 극적인 단일화에 성공해 구도를 양자대결로 바꿨고,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에 힘입어 6070 및 이대남·삼대남 표를 기반으로 승리했다.
지금 진행 중인 21대 대선은 일단 3자 구도로 가는 모양새다. 이재명 지지층의 결집도는 정점을 찍은 반면, 김문수 지지층의 결집은 진행 중이다. 남은 건 이준석의 선택. 국민의힘 측에서 연일 ‘러브 콜’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준석은 “김문수로의 단일화 가능성은 제로”라고 선언했다. 김문수는 이준석과의 결합에 막판까지 진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최종적으로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종국에는 ‘여론을 통한 단일화’, 즉 ‘투표를 통한 단일화’를 일구겠다는 각오까지 한 상태다.
◇추격전
투표일을 1주일 앞둔 27일 이재명에 대한 진보의 결집은 완료형이고 김문수에 대한 보수의 결집은 진행형이다. 선두 이재명에 대한 김문수의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최근 10여 일 사이에 두 자릿수대에서 한 자릿수대로 눈에 띄게 줄었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선거의 3요소: 선거 승부는 인물·이슈·구도로 결정돼.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인물 경쟁력이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이는 구도의 변화를 가져옴. 한국의 대선은 특히 구도의 중요성이 부각됨.
추격전: 이재명은 탄핵의 반사이익 누리며 초반부터 대량 득점했지만 사법 장악 논란과 호텔경제학 등 실수가 이어지면서 이슈 주도력 하락. 김문수는 뒤늦게 인물 경쟁력으로 지지율 높이는 중.
대선 독법: 이재명에 대한 진보의 결집은 완료형이고 김문수에 대한 보수의 결집은 진행형. 김문수의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단일화 문제를 어떻게 풀지가 후반전 최대 관전 포인트.
■ 용어 설명
‘도널드 킨더’는 미국의 역대 대선 후보들을 사례 연구한 미시간대 정치학과 교수. 정치 지도자의 자질과 특성으로 지도력, 업무능력, 진실성, 공감능력 등 4가지를 제시.
‘밥 맥티어’는 미국의 경제학자로 1991∼2004년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역임. 자유시장 경제와 규제 완화를 지지하며 한때 낙수효과 이론에 기반한 경제학을 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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