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트럼프 견제하는 미국 사법부
탄핵 아니라 항소하라고 일갈
한국에서도 대법원 공격 심각
선출된 권력의 다수 독재 위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막아야
취약한 사법부 흔들어선 안 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권남용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정명령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불법 체류자 즉시 추방, 기록적인 관세 인상 선포에서 하버드대의 유학생 등록 금지령까지.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지배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은 삼권분립의 마지막 한 축인 사법부가 담당하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 유학생 등록 금지령에 대해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은 하버드대의 가처분 신청을 즉시 받아들였다. 행정명령의 효력이 하루도 안 돼 바로 중지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법원 심리 없는 불법 체류자 추방을 중지시켰던 연방 판사는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그 판사는 아무것도 승리한 바 없다! 하지만 나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압도적인 다수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를 실천하고 있다”며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자신의 행정명령을 법원이 막아서는 안 되고, 그런 시도를 한 판사는 탄핵 돼야 한다는 논리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이 사법부 결정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탄핵이 아니라 항소하라는 성명을 내고 사법부 보위에 나섰지만, 제도적으로 별다른 방어책은 없다.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지지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사법부에 대한 공격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관련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더불어민주당 지배의 국회는 조희대 대법원장 등 유죄 의견을 낸 대법관 10인에 대한 탄핵을 거론하며, 지난 14일 청문회까지 열었다. 또한,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에도 ‘판사도 처벌 대상인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 ‘대법관 30명 증원법’과 ‘대법관 3분의 1 비(非)법률가 임명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일부는 철회했다.
더 우려스러운 바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 당당하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민주연구원의 전 부원장이 방송에서 한 발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발언의 요지는, ‘판사들은 이 사회의 소수 엘리트로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데, 주권자인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대선 전에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트럼프의 선거 승리자론과 동일한 맥락이다.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결정에 구속돼선 안 되고, 이견이 있으면 후자가 전자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 열등론이자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다.
민주주의는 세습군주도 귀족도 아닌 일반 평민이 다수의 의견을 좇아 지배하는 체제다. 소수보다는 당연히 다수의 뜻에 따라 지배하는 게 낫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최악의 경우 다수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다수의 독재를 막기 위해, 근대 자유민주주의 이론가들은 다수가 선출하는 입법부·행정부(대통령)와 함께,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사법부를 설치해 삼자 정립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법부에 다수결로 만든 법도 헌법에 위배되면 무효처리하고, 행정작용도 위법하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으면 집행을 중지시키는 권한을 줬다.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도 위헌행위를 하면 탄핵심판을 통해 쫓아내고, 다수가 지지하는 권력자나 사랑받는 유명인도 위법하면 유죄를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외풍에 흔들리지 말고 헌법과 법에 따라 엄정한 판결을 내리라고 고위 법관의 임기는 선출직 대통령이나 의원들보다 길게 만들고, 신분보장도 강하게 해준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는 사법부는 대중적인 자체 권력 기반이 없다. 또, 일반적으로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과 의회가 임명한다. 삼부(三府) 중 가장 취약한 기관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치와 함께 가야 하는바, 민주주의자라면 판결의 유불리를 떠나 사법부의 독립과 삼권분립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다수의 지배로만 이해해서 사법부의 독립과 법치를 훼손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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