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모친 이름으로 ‘추모 기부’한 전우연 씨

 

생선 장사하며 6남매 키워

힘든 사람 보면 늘 베풀어

 

나눔정신 물려받은 아들도

아프리카 빈곤아동 등 도와

 

“모아두기만 하면 돈이 아냐

좋은 곳에 의미있게 쓰기를”

고 심순애 씨가 2017년 선물로 받은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고 심순애 씨가 2017년 선물로 받은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어머니를 화장(火葬)한 뒤 집에 하루 정도 모셨어요. 그날 새벽에 이상하게도 잠이 깨 돌아가신 어머니 초상화를 한참이나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어요. 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시다 ‘나도 저렇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를 좀 하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던 어머니의 혼잣말이…. 마치 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전우연(57) 씨는 27일 초록우산에 500만 원을 기부하며 이렇게 밝혔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 고 심순애(사망 당시 94세) 씨의 이름으로 한 ‘추모 기부’다. 2남 4녀 중 심 씨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막내아들이었던 전 씨는 “어머니 초상화가 마치 제게 ‘너라도 기부를 좀 해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며 “추모 기부로 어머니와의 약속을 이제라도 지킬 수 있어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심 씨의 생전 삶은 ‘성실함’ 그 자체였다. 상황은 고단했다. 어린 시절 일제강점기를 지나 전후 혼란기에 6남매를 키워내야 했다. 매일 새벽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커다란 대야 한가득 생선을 받아다 용산구 한남동 어귀에서 장사를 했다. 이고 지고 겨우 버스에 올랐지만, 어느 날은 버스 바닥에 생선이 쏟아져 낭패를 보기도 했다. 힘들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어린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먼저였다. “치열한 삶 속에서 익숙해진 강인함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편안하게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말 저희 여섯 남매를 키우시며 쉴 새 없이 움직이셨어요.” 전 씨가 말했다.

자신이 어려워 봤기에 어려운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심 씨는 주변에 사정이 딱한 이를 보면 쌀을 사다 주고, 물건을 가져다주는 등 어떻게든 돕고 싶어했다고 한다. 거창한 나눔은 아니었으나 살뜰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길을 건너다 자전거를 탄 학생과 부딪쳐 전치 12주의 부상을 당했는데 마음 좋게 합의해준 일도 있다. 전 씨는 “정말 큰 사고였는데, ‘어린 학생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며 아무 조건 없이 좋게 합의해 주라고 말씀하셨다”며 “법원 관계자들이 ‘정말 좋은 분을 만났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어머니의 넓은 마음에 놀랐다”고 말했다.

고 심순애 씨가 2018년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항에서 나들이를 즐기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고 심순애 씨가 2018년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항에서 나들이를 즐기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그러면서도 마음속 열정은 잃지 않았다. 여성이 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마음에 둔 아들 전 씨가 군 전역 직전 어머니를 검정고시학원에 모시고 갔는데, 처음엔 낯설어하던 신 씨가 이내 초등학교 과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도 한글교실을 계속 다니며 배움을 이어갔다. “어머니가 글을 읽게 되시면서 동네 간판 등이 눈에 보이니 얼마나 신기해하시고, 기뻐하셨는지 몰라요. 정말 순수하고 아이 같으셨어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의 성실함과 따뜻함은 아들 전 씨에게도 고스란히 유산이 됐다. 전 씨는 “개인적으로 산악인 엄홍길 대장님의 도전정신을 존경해 그쪽에도 기부하고 있다”며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를 오르고, 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돕는 그 숭고한 뜻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관련 단체 두 곳에도 꾸준히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한 전시회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이 굶주린 사진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자연스레 나눔에 대한 마음이 생겨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씨는 추모 기부에 선뜻 참여하길 주저하는 이들에게 “돈도 결국 의미가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냥 모아두기만 하는 돈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거나, 잊히기 쉽다”며 “일일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돕는 일은 어렵지만, 초록우산처럼 좋은 뜻을 가진 단체를 통한다면 어머니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이어 “기부에 대한 마음이 든다면 일단 실천하는 힘이 중요하다”며 “좋은 뜻이 있는 곳에 함께해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현아 기자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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