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준의 Deep Read
美 입장에서 주한미군 지상군은 ‘가성비’ 낮아… 스트라이커 여단 이동배치 구상 힘 받아
韓 차기정권, 방위비분담금 등 난제 산적… 反동맹 성향 트럼프와 손잡아 안보 훼손하면 재앙


미국이 4500명의 주한미군 지상군을 철수해 동아시아의 다른 미군기지로 이동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로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한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 문제 검토를 본격화하면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27일(현지시간) 주한미군 감축 등을 포함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모든 것을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하다.
◇주한미군 감축사
주한미군 감축의 역사는 한미동맹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초기 단계 감축은 6·25전쟁 이후 정세 안정에 따른 감축이었으나, 1960년대 말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행정부는 각각 국방예산 절감과 민주화 압박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전면 철군을 추진했었다. 당시 방대한 군사력을 보유한 북한의 남침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미국 의회 내 철군 반대 여론을 동원해 강력히 저항했고, 미국의 전면 철군 시도는 좌절됐다.
베트남전쟁 와중에 1969년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추진했으나, 한국 정부의 반발로 1971년 1개 사단만 철수하기로 결정됐다. 인권침해국인 한국으로부터의 미군 전면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1977년 집권한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3단계 전면 철수 일정을 발표했지만, 의회와 국방부의 반대로 1979년 이를 접었다.
그 결과 주한미군 병력이 1979년 3만9000명으로 감축됐는데, 그 후에도 미국 정부는 해외 미군의 효율적 운용과 국방예산 절감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부분적 감축을 부단히 추진했다. 조지 H W 부시 행정부는 1991년 냉전 종식 후 국방예산 감축에 따라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추가 감축했고, 이라크전쟁 장기화로 2004년 주한미군 1개 여단 4000명이 추가로 줄어 이라크로 이동 배치된 이래 2006년 이후 현재까지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20년간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시각
박정희 시대 이후 미국의 주한미군 전면 철수 시도는 사라졌으나, 지상군 병력을 최소화하고 해·공군 위주로 재편성하고자 하는 미 당국의 오랜 염원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이 부족한 미군 병력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유럽·동아시아 등으로 돌려막기 하는 상황에서, 전투도 없는 한반도 전선에 70년간 고정 배치된 주한미군 병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미군 병력’이라는 것이 미국 국방 당국의 시각이다.
해외 주둔 미군의 효율적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사이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주일미군은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군으로, 한반도·대만·남중국해 어디든 투입이 가능하다. 미 해군이 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제7함대의 모항을 호놀룰루가 아닌 일본 요코스카(橫須賀)항에 두는 것도 시사적이다. 반면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어에 국한되고 유사시 타 지역 투입이 불가능한, 미국 입장에서는 ‘가성비 낮은’ 병력이다.
미국 정부가 주한 미 지상군의 감축을 부단히 추진해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군 전력과는 달리 지상군 부대는 이동 배치가 어렵고 전쟁 발발 시에도 유의미한 전투력이 되지 못하는 병력으로 여겨진다. 외신 보도에 언급된 4500명의 미 지상군 감축은 한국에 남은 마지막 지상군 전투부대인 스트라이커 여단의 전면 철수를 뜻하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심대하다. 그 밖에 남은 지상군은 포병여단과 지원부대들뿐이다.
◇스트라이커 여단
트럼프 대통령은 제1기 집권 때에도 스트라이커 여단의 철수를 추진했으나, 의회와 국방부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제2기 집권 시 과제로 넘긴 바 있어 향후 이를 재추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가로막을 소신파 국방 전문가들이 이제는 행정부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더더욱 큰 문제는 대만전쟁에 대비해 중무장 스트라이커 여단을 괌이나 오키나와(沖繩)로 재배치하자는 미국 정부 일각의 견해에 나름 합리적 명분이 있어 이를 무산시키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6∼2027년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미·중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인근 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지상군 전투병력은 오키나와의 경무장 해병대 병력뿐이다. 따라서 미국이 동아시아에 보유한 유일한 중무장 전투부대인 스트라이커 여단을 유사시에 대비해 괌이나 오키나와에 이동 배치한다는 구상은 상당한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타 지역 분쟁 개입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스트라이커 여단을 계속 한반도에 가둬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미·중 무력 충돌 발생 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따른 동맹의 의무를 외면하려는 기색이어서, 미국으로서도 다른 뾰족한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협상의 향배
한국 대선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미뤄온 미군 감축, 방위비 분담금 인상, 대중국 압박에의 기여와 동참 등 예민한 안보 사안들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전망이다. 그 협상에서 난관이 예상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족한 국방예산과 병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운용하려는 미국의 입장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가둔 채 역내 분쟁 개입을 차단하려는 한국의 입장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괴리가 극복되지 못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의 이동 배치 외의 합리적 방안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한국이 ①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대폭 허용하거나 ②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긍정적으로 임하거나 또는 ③미국의 병력 수요를 실질적으로 경감해 주는 군사적 기여를 적극 제공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 여론이나 정치권의 입장에 비춰 볼 때 그 어느 선택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어서, 주한미군 감축은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이번 대선을 통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정권이 들어서 반동맹적 성향이 짙은 트럼프 행정부와 손잡고 동맹 파괴가 이뤄진다면, 주한미군의 현상유지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세종연구소 이사장, 전 외교부 북핵대사
■ 용어 설명
‘닉슨 독트린’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69년 7월 괌에서 발표한 외교정책. 아시아 당사국들이 외부의 공격에 대해 스스로 저항·저지해야 된다는 선언을 주 내용으로 함.
‘스트라이커 여단’은 미 육군의 기계화보병부대로 현재 주한미군 지상군의 주 전력. 보병이나 기갑 여단전투단과는 다르게 조직되며 네트워크 중심전 교리를 구현하는 데 이용됨.
■ 세줄 요약
미국의 시각: 미국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성비’ 낮은 병력. 중국의 군사적 도발이나 팽창전략에 신속 대응하는 이동 배치가 어려워 전쟁 발발 시 유의미한 전투력이 못 되기 때문.
스트라이커 여단: 따라서 중국의 대만 침공 등에 대비해 미국이 동아시아에 보유한 유일한 중무장 전투부대인 스트라이커 여단을 이동 배치하려는 구상은 나름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며, 이를 무산시키기는 쉽지 않아.
협상의 향배: 새 정부 앞에는 미군 감축, 방위비 분담금 인상, 대중국 압박 동참 요구 등 난제 산적. 차기 정부가 반동맹 성향이 짙은 트럼프와 손잡아 동맹 파괴가 이뤄지면 주한미군 현상유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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