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제2번 ‘비밀편지’
63세때 25세 유부녀와 사랑
11년간 700여 통 연애편지
그 속에 담겨진 내용에 영감
비밀스럽고 친밀한 음악으로

한 예술가와 작품을 평가할 때, 작품 자체만을 두고 평가해야 할 것인지 또는 작품 자체만이 아닌 주제나 표현 방법, 더 나아가 작가의 도덕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개의 잣대로 나뉜다.
“좋은 말과 좋은 곡조와 우아함과 좋은 장단도 모두 좋은 인품을 따르는 것”이란 플라톤의 말처럼 예술가와 작품 모두에 있어 도덕적 검열이 필요하다는 도덕주의적 관점이 하나 있다. 또 다른 하나로는 심미주의적 관점으로 작품 자체만을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비평가 스핑건(1875∼1939)의 말을 인용하자면 “작품을 두고 비도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이등변삼각형을 두고 비도덕적이라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시각이다.
예술의 표현 방법과 주제는 실로 다양해 비단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숭고한 것부터 통속적이거나 추한 것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작품 중엔 한 예술가의 그리 떳떳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을 담아낸 작품도 있으니 바로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다.
체코 모라비아 출신의 작곡가 야나체크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는 60대에 들어서고부터였다.
50세가 되던 해인 1904년, 10년간에 걸쳐 완성한 그의 걸작이자 대표작인 오페라 ‘예누파’를 초연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12년 뒤인 1916년엔 마침내 프라하의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게 된다. 즉, 야나체크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는 그의 나이 62세부터였다.
프라하에서 ‘예누파’로 대성공을 거둔 이듬해인 1917년 온천에서 휴양을 즐기던 63살의 야나체크는 운명의 여인 카밀라 스퇴슬로바를 만나게 된다. 이 여인은 고작 25살의 어린 나이였는데 야나체크보다는 무려 38살이나 연하였고 게다가 아이까지 둔 유부녀였다. 야나체크에게도 부인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하기만 했는데 특히 두 사람 사이에 두었던 두 명의 자녀가 모두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온 지 오래였던 것이다.
카밀라에게 사랑에 빠진 야나체크는 자신의 사랑을 숨기지 않았고 두 사람의 만남은 11년간이나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야나체크는 무려 700여 통의 연애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편지들에 영감을 받아 작곡하게 된 작품이 바로 현악사중주 제2번 ‘비밀편지’이다.
야나체크는 원래 이 작품의 제목을 ‘러브레터’로 이름 지을까 고민했지만 그보다는 중의적인 표현인 ‘비밀편지’로 결정했다.
체코어 원제로는 ‘Listy duverne’인데 여기서 체코어 duverne(두베르네)는 ‘비밀’이라는 뜻과 함께 ‘친밀하다’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야나체크의 비밀스럽고 친밀한, 가슴속 깊은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저자
■ 추천곡 들여다보기
레오시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제2번 ‘비밀편지’는 야나체크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28년에 작곡되었으며 초연은 그가 사망한 지 한 달 뒤인 1928년 9월 11일 모라비아 현악사중주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작품은 전체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 속에 흐르는 비올라의 선율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카밀라를 연상케 한다.
제1악장은 느리고 우아한 안단테 악장으로 카밀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묘사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제2악장은 함께 여름휴가를 보냈을 때를 추억하는 듯한 악장으로 느린 템포의 사랑스러운 선율이 흐르다가 이내 템포가 빠르게 전개되며 긴장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제3악장은 그가 사랑했던 카밀라를 그려낸 악장으로 바이올린의 우아한 선율이 백미이다.
제4악장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다가 곧 불안과 그리움과 혼란, 불안의 악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악상은 이내 쾌활함을 되찾고 화려한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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