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가 만난 사람 - 신원호 에그이즈커밍 PD

 

Q ‘응답하라’부터 ‘슬기로운’ 시리즈까지… 잇단 흥행 비결은?

 

고윤정은 털털한 ‘남동생’ 매력

한예지 ‘쟤 왜 잘해?’ 놀라곤 해

정준원 슬의생 오디션때 찍어둬

 

드라마 몰라서 가능했던 첫도전

‘이왕 망할 거면 새롭게’ 뜻 모아

개인적으론 ‘응사’가 가장 웃겨

 

K콘텐츠의 호황 조금씩 감속중

투자자·시스템의 문제 넘어서야

잠재력 가진 인재 많은 건 다행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슬전생’)의 크리에이터 신원호 PD가 지난 12일 자신의 작품 포스터가 장식된 서울 논현동 에그이즈커밍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12부작을 화제 속에 마무리한 ‘슬전생’ 팀은 현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박윤슬 기자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슬전생’)의 크리에이터 신원호 PD가 지난 12일 자신의 작품 포스터가 장식된 서울 논현동 에그이즈커밍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12부작을 화제 속에 마무리한 ‘슬전생’ 팀은 현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박윤슬 기자

인터뷰=김인구 문화부장

종합병원 전공의들의 성장기를 그린 tvN 토일극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슬전생’)이 지난 18일 마지막회 시청률 8.1%(닐슨코리아 집계)로 인기리에 마무리됐다. 지상파 드라마에 관한 관심이 부쩍 떨어진 요즘 첫 회 시청률 3.7%로 시작해 2배 이상 상승한 고무적인 결과다. 게다가 지난해 의료 파행으로 전공의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매우 눈에 띈다. 고윤정, 신시아, 정준원 등 출연 배우들은 물론 김송희 작가와 이민수 PD 등 제작진들도 안도하는 분위기. 그러나 뒤에서 누구보다 가슴을 졸였던 이는 이 드라마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였다. 신원호-이우정 콤비는 ‘슬전생’의 원조 격 드라마인 ‘슬기로운∼’ 시리즈의 제작진이었고, 이보다 앞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창작자였다. 드라마를 통해 세대를 통합하는 ‘문화 코드’를 만들어온 신 PD를 지난 12일 서울 논현동 에그이즈커밍 본사에서 만났다. 당시는 ‘슬전생’이 10회까지 방송된 직후였다. 신 PD는 “1년 정도 방송이 연기돼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며 미소 지었다.

◇의료 파행 여파로 방송 연기 1년…“10회까지 나가니 좀 걱정 덜어”

―조금은 편안해 보인다.

“원래 휴식기에도 잘 놀지 못한다. 뒤에서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것이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10회 반응까지 나온 후 거의 오늘 처음으로 걱정을 내려놓고 있다.”

―늘 직접 만들어 왔는데… 이번엔 크리에이터로서 어떤 역할을 한 건가.

“‘슬전생’은 김 작가와 이 PD의 작품이다. 김 작가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을 같이했던 작가여서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스핀오프로 연결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먼저 했는데 그게 김 작가를 통해 확장된 셈이다. 저와 이 작가는 기획 초기에 같이 회의하고, 주요 배역의 캐스팅 오디션을 도왔다.”

―이번에도 맞춤옷 같은 캐스팅,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가 인상 깊었다.

“오이영 레지던트 역의 고윤정은 연예인 같지 않은 모습 때문에 눈에 띄었다. 외모가 참 아름다운데 행동은 털털하다. ‘남동생’ 같다. 우리처럼 일상성이 중요한 드라마에 딱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동기로 나온 신시아(표남경), 한예지(김사비), 강유석(엄재일)도 빼놓을 수 없다.

“신시아는 감정이 풍부하다. 감정을 발화시키려고 준비된 사람이다. 한예지는 이번 연기가 처음이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이다. 볼 때마다 ‘쟤는 왜 잘해?’라고 우리끼리 놀라곤 했다. 강유석은 ‘폭싹 속았수다’로 더욱 이목을 끌었다.”

―‘착한 어른’ 같은 정준원(구도원)도 기억에 남는다.

“정준원은 ‘슬의생’ 시즌1 때 마지막 오디션에서 뽑지 못한 후 늘 마음 한편에 점 찍어뒀던 배우다. 언젠가는 캐스팅한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에 구도원과 매칭이 됐다.”

◇인기 비결 3가지 : 일상성+복선+예능 기초

―역시 일상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이게 ‘신원호표’ 드라마의 근원적 매력 같다.

“우리 작품에선 일상성이 가장 중요하다. 웅장하고 거대한 서사는 없다. 대신 일상적인 일에 더 깊이 들어가 본다.”

―또 하나의 매력은 치밀한 복선… 일상적 소재인데 스릴러 뺨치는 복선이 깔려 있다. 비결이 뭔가.

“거의 모든 대본을 다 쓰는 이 작가 덕분이다. 이 작가가 머리가 비상하다. 큰 서사보다는 일상에서 재미와 맛을 찾는 편이다. 갈등 구조가 일상에서 이뤄지기에 기승전결로 흘러가다 보면 다른 장르극에 비해 임팩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든다.”

―제작진이 예능에서 출발한 것도 이유가 돼 보이는데….

“맞다. KBS에서 이 작가와 예능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사실 드라마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기존 방식으로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었다면 범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드라마는 이래야 한다’는 룰이 없었다.”

◇‘응칠’-“어차피 망할 거 새롭게”, ‘응사’-“개인적으로 가장 웃긴 작품”

‘신원호표 드라마’의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응답하라∼’ 시리즈일 터. tvN 이적 후 2012년에 처음 만든 ‘응답하라 1997’(응칠)은 신 PD에게 각별한 의미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아이돌 1세대인 H.O.T.와 젝스키스를 소재로 이들에게 푹 빠진 고교생들의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 과연 이런 곁가지 같은 소재로 시청자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정은지, 서인국 등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시청률은 5%로 케이블TV치곤 기록적인 성과를 올렸다.

―처음에 ‘응칠’ 같은 드라마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응칠’ 전에는 드라마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tvN에서도 당연히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트콤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이미 다 세팅이 돼 있고 저만 연출로 합류하는 것이어서 고사했다. 그러고는 우리끼리 해보겠다고 했다. 이왕 망할 것이라면 차라리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신 PD는 ‘응칠’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듬해 곧바로 ‘응답하라 1994’(응사)를 만들었다. 고아라, 정우 등이 출연했던 ‘응사’는 속편의 징크스를 깨고 케이블 드라마 최초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달성했다.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신촌 연대 94학번 하숙생들을 주인공으로, 1990년대 초중반의 현대 문화사를 재현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1994년 최고 스포츠 이벤트였던 농구대잔치 등이 그 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94학번인데,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게 아닌가.

“저도, 이 작가도 94학번이다. 저는 서울 사람이라 하숙 경험이 없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하숙생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제 작품 중에 제가 봐도 가장 웃긴 작품이다.”

◇‘응답하라∼’ 후속작, “언젠가는 만들어 보고 싶어”

그리고 최고의 히트는 2015년 작 ‘응답하라 1988’(응팔)이다. 1980년대 말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정으로 똘똘 뭉친 5가족의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풀어내 큰 사랑을 받았다. 최고 시청률이 무려 19.6%. 이혜리, 류준열, 박보검은 물론 그들의 가족으로 나오는 성동일, 라미란 등이 모두 유명해졌다. OST(배경음악)도 난리가 났다. ‘걱정 말아요 그대’ ‘매일 그대와’ ‘세월이 가면’ 등 주옥 같은 명곡이 쓰였고, ‘역주행’ 인기를 끌었다.

―쌍문동 5가족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왜 쌍문동이었나.

“특별한 인연은 없다. 그저 ‘도봉구 쌍문동’이라는 어감이 주는 푸근함과 구수함에 끌렸다.”

―소품과 음악으로 재현된 시대상이 섬세했다. 특별히 신경 쓴 점은.

“우리는 드라마를 만들기 전에 취재를 많이 하는데 그게 통한 것 같다. 쌍문동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바둑기사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기사들의 일상과 버릇까지 취재했다.”

―‘응답하라 2002’ 등 후속작은 언제쯤 나올까.

“팬들의 기대가 있는 모양이다. 언제 하겠다고 제가 말한 적은 없다. 모든 건 미정이다. 그러나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분명히 있다.”

◇‘슬기로운∼’ 시리즈, “음악은 소품이자 미장센”

‘응답하라∼’로 주목받았음에도 신원호-이우정 콤비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20년 시청자의 추억에 또 하나 깊이 박혀 있는 ‘슬의생’ 시리즈를 내놓았다. 조정석, 정경호, 전미도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했다. 우리 옆집에 살 것만 같은 착하고 순수한 의사들의 면모에 큰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지났으니 하는 말인데, 덕선의 남편은 원래 택으로 설정돼 있었나.

‘응팔’에는 덕선(이혜리)이 성인이 돼서 결혼하는 상대가 정환(류준열)인지, 택(박보검)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 엔딩까지 이어진다. 이는 시청자들 사이에 정환과 택을 두고 편을 가르게 했고, 결국 덕선의 남편은 택으로 마무리되면서 왜 정환이 아니었는지를 따져 묻는 팬까지 나타났다.

“덕선의 미래 짝은 원래 택이었다. 중간에 대본을 바꾸진 않았다. 하하.”

―역주행 OST도 매번 화제였다.

“음악은 그 자체가 소품이고 미장센이다. 개인적으로도 1990년대 음악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다. 특히 ‘슬의생’ 시즌2에서는 아예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출연 배우들로 구성된 밴드를 설정했다. 조정석이 부른 ‘아로하’는 역주행해서 모든 음악차트 1위를 석권했다.”

◇K-콘텐츠 위기 해결책? “글쎄… 다행인 건 아직 잠재력이 있다는 것”

―K-콘텐츠와 지상파의 위기란 말이 자주 들린다.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 유례없는 호황을 겪었다. 그러나 점차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고, 제작비도 너무 올랐다. 뭐가 됐든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자들의 힘만으론 안 된다. 투자자, 플랫폼, 시스템의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다행인 건, 우리에겐 여전히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꿈이 영화감독이었다고 들었다. 아직도 유효한가.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영화감독의 꿈이 마치 굳은살처럼 남아 있긴 하지만 단지 영화감독이 되는 게 목표는 아니다. 한 작품이 있는데 그게 2시간여의 러닝타임이라면 영화에 맞는다고 할까? 거기에 맞는 이야기가 있고, 좋은 영화가 나오겠다 싶으면 하고 싶다.”

김인구 기자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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