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토론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이소크라테스 ‘안티도시스’
선한 영혼의 생각
아름다운 말로 표현
‘어떤 말 하느냐’가
그 사람 인격 보여줘
존중·배려 없던 토론
유권자에게 아픈 상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여기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흔히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권력을 위해 권모술수도 불사하고, 권력을 쥐면 안하무인 군림하는 오만하고 비열한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세상 선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위선도 덧붙는다. 정말 이런 모습이 인간의 본성일까. 원래 뜻은 그렇지 않으니 ‘정치’는 매우 억울할 것 같다. “일그러진 것, 잘못된 것을 바로(正)잡기 위해 막대기를 들어 친다”라는 뜻의 ‘정(政)’과 “세상만사가 평온하고 안정되게 물(水)처럼 흐르도록 다스려져,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어 기뻐한다(台)”는 뜻의 ‘치(治)’가 합쳐진 ‘정치(政治)’의 뜻은 얼마나 고결하고 아름다운가!
언어와 실제의 괴리는 ‘정치적’의 그리스말 ‘폴리티코스(politikos)’를 따져봐도 도드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권력 지향적 속성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여럿이 모여 하나의 ‘폴리스(polis)’를 이루어 그 일원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적(politikos)’ 동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 없이 사는 사람은 모자란 사람이거나 인간 이상의 존재다. 그런 사람은 장기판을 떠난 장기 말과 같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고 말한다. 바둑판을 떠난 돌을 ‘사석(死石)’이라고 하듯, 공동체를 떠난다면 인간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말(logos)’이라고 한다. 벌이나 개미, 물고기 같은 동물들도 군집 생활을 하고,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말을 통해 소통하고 뜻을 모아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사학자인 이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설득하고, 우리가 논의하게 될 일들에 관해 자기 의견을 드러낼 능력 때문에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서 도시를 이루며 살아왔고, 법을 세울 수 있었으며, 기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고안한 거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마련해준 힘, 그것이 바로 말(logos)이다.”(이소크라테스 ‘안티도시스’)
공동체의 존립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 사이의 애정과 신뢰, 존중과 배려다. 그 바탕 위에서 책임과 자유, 연대, 공동체 의식이 무르익을 때, 국가는 건강하게 존립하며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며, 무시하고 배제한다면, 구성원들 사이에 균열과 갈등, 다툼이 고조되며 결국 공동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말이다. 이소크라테스는 말을 ‘영혼의 모상’ ‘생각과 삶의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선한 영혼에서 좋은 생각, 훌륭한 삶이 가능한데, 이 모든 것은 명료하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된다는 뜻이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며, 듣는 사람의 영혼에 자신의 이미지를 그려주는 것이다.

세 번에 걸친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은 어떠했나. 그들의 말은 우리 국가 공동체의 건전한 존립과 발전을 그려내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힘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몹시 안타깝고 씁쓸하다. 후보들이 정성껏 준비한 정책을 들으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를 그려내는 즐거운 상상의 시간이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상호 존중과 유권자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상대를 공격하는 저열한 말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언어의 칼부림에 토론장은 선혈이 낭자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유권자들의 마음엔 그들이 질러댄 언어가 남긴 아픈 상처가 깊게 남았다. 우리를 대표하며, 공동체 전체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만 더욱더 선명해졌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그 방향도 전망도 예측 불가능성의 우울한 색채로 잔뜩 흐려져 버렸다. 어쩌면 그것은 오늘만의 특별한 모습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깨어있는 정신일 것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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