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헌재소장 권한대행 김형두
재판관 회의서 만장일치로 선출
진보 - 보수 얽매이지 않고 심리
尹탄핵때 서류 등 가방만 4~5개
변론요지서마다 포스트잇 빼곡
부친상에도 재판 위해 정상 출근
느긋한 말투로 예리한 질문 눈길
취재진 질문 성실 답변으로 화제
차기 정부 ‘헌재 소장’ 하마평도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 약자 인권을 보호하고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한편 헌법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뤄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김형두(60)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023년 3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에 취임하며 이 같은 각오를 다진 지 2년 2개월이 지났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더불어민주당의 ‘재판소원 도입’ 추진 논란에 휩싸이며 헌재가 초미의 관심이 된 가운데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이어 ‘국민 기본권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헌재 수장에 오른 김 권한대행에게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지만 사실상 불발됐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새 후보자들을 지명·임명할 때까지 헌재는 당분간 재판관 정원 9명 중 2명이 공석인 ‘7인 체제’로 불안한 외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 권한대행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문 전 권한대행 퇴임 후 40여 일이 지난 가운데 헌재가 일상을 되찾고 안정적으로 유지·운영되는 배경에는 김 권한대행의 꼼꼼함이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법부 요직 거친 대표 ‘엘리트 법관’…법리·사법행정 두루 정통= 김 권한대행은 동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법시험 29회에 합격, 1993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영장부장판사·형사합의부장판사·민사2수석부장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특히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과 송무제도연구법관·사법정책2심의관, 춘천지법 강릉지원장, 사법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거치며 사법행정과 정책연구 경력도 갖춘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도쿄(東京)대, 미국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국제경험도 있다. 김 권한대행은 이러한 다양한 경력을 활용해 권한대행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헌재 재판관 평의에서는 진행 중인 재판에 관한 사항 외에 헌재 행정과 살림에 관한 중요 사안에 대해서도 종종 논의가 이뤄지는데, 김 권한대행은 헌재 예산과 국회 입법에 관한 의견, 연구관 교육과 같은 행정 관련 사항도 꼼꼼하게 살피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헌재가 해당 입법 취지에 동의하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의견서 내용도 김 권한대행이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탄핵심판’에선 서류왕·질문왕으로 주목= 헌재 안팎에서는 지난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시 문 전 권한대행이 파면 선고를 마친 뒤 김 권한대행의 등을 두드리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문 전 권한대행은 탄핵심판 주심이 아닌 김 권한대행이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며 심리에 전념하고 변론기일에도 재판관 가운데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며 헌신적 태도를 보인 데 대해 자연스러운 격려의 표현을 한 것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김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25일 부친상을 당한 슬픔 속에서도 정상 출근해 27일 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을 차질 없이 챙기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 김 권한대행은 매번 배낭·서류가방·도시락가방 등 4∼5개 짐을 짊어지고 출근하는가 하면 변론기일마다 심판정에 접착 메모로 표시해 둔 서류 더미를 잔뜩 들고나와 ‘서류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밀하게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특유의 느리고 나긋한 말투로 증인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권한대행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계속 증언을 거부하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을 향해 “대통령이 법률전문가니까 적법한 지시라고 생각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지시는 작전지시로 이해해서 믿고 따르지 않았느냐”며 “증인이 기소됐으니까 굉장히 억울한 상황 아닌가”라고 물으며 증인을 달래기도 했다.
김 권한대행은 법관 시절에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공판중심주의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2년 후보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했을 당시 공직선거법상 후보매수 및 이해유도죄의 법리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권의 법률서적을 두고 즉석에서 프레젠테이션하거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회동한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법정에 대형 스크린을 걸어 포털사이트의 ‘로드뷰’를 띄우고 재판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헌재 구성원 및 언론과도 ‘적극 소통’= 김 권한대행은 헌재 안팎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다른 재판관들은 헌재 청사로 출근하며 등청길 취재에 대부분 응하지 않은 반면 김 권한대행은 민감한 여러 현안에 관한 취재진 질의에 성실히 답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26일 헌재 청사로 출근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대리인 선임 등 각종 서류 미제출로 인한 재판 연기 가능성 등을 묻는 질의에 “저희로서는 제출된 자료를 가지고 재판을 준비하고 있고, 변론준비기일과 관계없이 재판 준비는 진행할 수 있다”고 답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김 권한대행은 재판관들은 물론 연구관 등 헌재 일반 구성원들과도 자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20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의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김복형·마은혁 재판관과 함께 헌재 뒤뜰을 걸으며 한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한 헌재 관계자는 “직원들과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대표 메뉴나 경치 좋은 자리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며 “굉장히 세심하게 직원들을 챙기는 스타일”이라고 김 권한대행의 소탈한 면모를 전했다.
◇진보·보수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차기 정부 헌재소장 하마평도= 김 권한대행은 호남인 전북 정읍 출신이지만 진보·보수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진보 성향의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으로 사법개혁에 역할을 했고, 보수 성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진보 성향 김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도 각종 개혁 업무를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헌재 재판관에 임명된 뒤에는 비교적 중도·보수 성향 결정을 내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권한대행의 ‘소수자’ ‘약자’를 향한 연대 의식은 차남의 자폐성 장애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이러한 사실을 밝히면서 “지금도 제 처와 저의 몸에는 둘째로부터 꼬집히거나 물려서 생긴 상처, 흉터가 남아 있다”며 “제 처지가 좀 어렵더라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고 담담히 술회했다.
새 대통령 취임 전이어서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법조계 내부에서는 김 권한대행을 헌재소장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주목하고 있다. 박한철·이진성·유남석 전 헌재소장 등이 재판관 임기 중 대통령에 의해 헌재소장으로 임명된 전례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김 권한대행이 헌재소장이 할 역할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고, 진보·보수 성향 사이에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차기 대통령이 선택하기에 무난한 카드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후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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