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창완과 꾸러기들 ‘무슨 색을 좋아해도’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이별의 노래가 분명한데 어느 순간 응원가로 바뀌었다. 함성과 떼창이 운동장을 휘몰아치면 경기가 저문 거다. 노래 제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원곡은 ‘잘 있어요, 잘 있어요’로 시작한다. 제목도 ‘잘 가세요’가 아니라 ‘잘 있어요’(1973)다. 가수는 이현(1950년생), 두 해(1973, 1974)에 걸쳐 MBC 10대가수로 선정될 만큼 당시에 인기가 좋던 분이다. 대표곡은 ‘춤추는 첫사랑’(1971), ‘이별이 주고 간 슬픔’(1975)이다.
이별이 주고 간 슬픔은 노래마을의 흔한 소재다. ‘잘 가요 내 사랑’(방시혁 작사 작곡)도 그런 계열인데 노래를 부른 그룹(에이트)의 보컬 이름이 공교롭게도 이현(1983년생)이다. ‘힘겹더라 많이 사랑했던 터라 뭐 하나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더라’ 많이 사랑했다면서 왜 그리 힘겨운가. 굳이 찾자면 원인은 자업자득이다. 말로는 사랑한다면서 자기 뜻대로 되기만 바란 건 아닐까. 만약 상대의 뜻을 존중하고 인내했다면 이별의 시간이 오지 않거나 더디게 오거나 설령 헤어져도 크게 상처받진 않을 성싶다.
동명이인 얘기가 나오니 이 사람도 생각난다. ‘스타의 향기’라는 칼럼을 연재할 때 무섭게 떠오르는 개그맨 신동엽을 만났다. 헤어질 즈음 해서 슬쩍 물었다. “혹시 시인 신동엽 아는지?” 그가 머뭇거리지 않고 ‘껍데기는 가라’ 시 제목을 말해서 적잖이 놀랐다. 나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그의 가벼운 행보에 왠지 알맹이가 꽉 찬 느낌이 들어서 흐뭇했다.” 고작 시 제목 한 개 맞혔다고 감탄한 게 아니라 주문 같은 말(‘껍데기는 가라’)을 노래하듯 (리듬에 실어) 표현한 게 퍽 인상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결심은 자신을 에워싼 껍데기와의 이별이다.
이별의 공식은 따로 없다. 여러 방식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즐거웠다.” 공손한 말 같지만 짐작하다시피 이별 통보다. 이제 더 이상 얼굴 볼 일 없을 거란 얘기다. 경위를 캐물으니 ‘이유 같지 않은 이유’(박미경 노래)를 댄다. ‘좋아하는 색이 달라서’ 세상에 이런 이유도 있나. 한때 가깝던 둘 사이를 돌이켜보니 노래가 자동으로 연결된다. ‘나를 사랑했단 말도 모두 연극처럼 느낄 뿐이야. 이젠 내 맘속엔 너의 자린 없어’(‘이유 같지 않은 이유’)
무슨 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슨 색을 좋아해도 함께할 수 있어야 너그러운 친구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이 노래를 소환한다. ‘아무 색이면 어때 우리 사이엔 무지개색 꿈이 있는데’(제목 ‘무슨 색을 좋아해도’)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산울림 김창완이다. 그가 먼저 독집(1983)에 실었고 2년 후 6인조 프로젝트그룹(꾸러기들)이 다시 녹음했다. 김창완은 종합예술인이다. 글도 쓰고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심지어 연기도 한다. 그런데 그 무지개색 바탕이 욕심 아닌 동심이라 돋보인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놀아요. 뜀을 뛰며 공을 차며 놀아요’(‘개구쟁이’) 하며 다가오니 피할 재간이 없다.

‘꿈’ 꾸러기들에게 선물한 대표곡에도 동심을 담았다. ‘밤하늘에는 그래도 별이 떠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고 생각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사는 게 아니라 노니며 즐기는 것’(제목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다투며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이좋게 노는 게 행복한 삶이란 얘기로 들린다. 나는 꾸러기들의 성탄 앨범(1985)에서 ‘우리는 한동네 사람들’(김창완 작사 작곡)을 특히 좋아한다. ‘이 땅 위에 별처럼 꽃처럼 희망이 피네. 우리는 한동네 사람들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가네’ 그렇게 놀면 바보 된다, 혹은 지면 죽는다는 학교에선 천재도 천사도 친구로 지내기 어렵다. 까불지 마, 떠들지 마, 웃기지 마, 딴생각하지 마. 이런 주문이 희귀한 교실이라야 김창완, 신동엽 같은 소년들이 즐겁게 날개를 펼치지 않을까.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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