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다는 말, 외롭다는 뜻이었군/ 외로움을 호소하진 못하고/ 심심해서 죽겠네/ 그런 거였군/ 심심해서 죽겠는 걸/ 사람으로 놀이로 달래다가/ 그도 여의치 않아/ 정말 심심해지니까/ 심심하지 않네/ 오늘은 뻐꾸기가 우는데/ 내 맘이 산도 되고 들도 되고/ 쾌청한가 하면 울적하여/ 저마다 울림이 있네.’

- 손택수 ‘심심하다는 말’(시집 ‘눈물이 움직인다’)

한 사과문의 ‘심심(甚深深)한 사과’라는 표현으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 표현이 아니라 이를 오해해 비난한 댓글이 다수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심하다’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란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심심하다’에 여러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의심 없이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심심할 틈이 없어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심심은 후자, 즉 ‘지루하고 재미가 없음’을 가리킨다. ‘지금-여기’서 사는 사람들에겐 단 1초의 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기까지 사람들은 들여다보고 듣고 있다. 심심할 틈이 없다. 심심할 틈이 없다는 건 생각할 틈이 없다는 것과 같다. 어떤 상황에 골똘해지는 것 역시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과 노력이 든다. 심심할 줄 아는 사람은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의심하고 고민하고 뒤적여 보면서 공을 들여 판단을 내린다. 사과문에 적절치 않은 표현이 있을 때 작성자가 틀린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찾아보고 검증하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태도, 어쩌면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심심함은 나를 비로소 혼자로 만든다. 혼자여서 궁리하고 혼자여서 찾아낸다. 혼자인 사람은, 그제야 진정한 연결성을 이해하고 넉넉해진다. 요즘 우리는 너무 성급하다. 그들 중 하나로 숨어 허겁지겁 삼키고 만다. 심심해질 필요가 있다. 깊고 깊어질 필요가 있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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