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李정부 기대 속 상당한 경계감
‘국민 전체’를 지지자와 혼동땐
위임권한 한계 무시, 전횡 위험
정의는 권력이 독점할 수 없어
내란 응징, 재판 중지 입법 등
남용 아닌 자제가 순항 시험대
이제 ‘이재명 정권’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대를 표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새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일’ 주문이 쏟아지는 것도 기대의 어법이다.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더 마음이 쓰인다. 전임자의 위헌·위법한 정치 수작과 비판 여론 덕분에 대선 패배 3년 만에 승리한 대통령이다. 난형난제의 퇴행 정치로 동반 퇴진 여론까지 일었지만, 고비마다 결정적인 판결로 회생해 천신만고 끝에 권좌에 오른, 스스로 “비주류·아웃사이더·변방에서 성장해 드디어 중심으로 왔다”는 정치인. 삶의 궤적·인식·능력 등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고, 5개 재판이 진행 중인 통치권자. 국민 신뢰를 대선 득표율로만 환산하기엔 유보적인 여론이 많은 최고위 리더. 그러니 기대보다는 경계부터 앞서는 것일 테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우선 ‘국민 몰이’ 정치다. 줄곧 “정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해왔다. 국민주권을 언급하며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 일꾼, 대리인일 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반쪽을 탄압하고 편 가르는 ‘반통령’이 아닌,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도 환영한다. 하지만 권력자가 입에 달고 사는 ‘국민 여망’이 권력 전횡으로 이어진 비극은 고대 아테네부터 인류 역사에 숱하다. 민주주의와 대통령제의 근원적 모순에 대해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정치학자 후안 린츠(1926∼2013)는 두 가지 위험을 지적했다. “대통령이 전체 국민의 유일한 선출된 대표자라는 생각”과 “자신의 지지자들을 ‘국민 전체’와 혼동할 때”다.
통치권자가 국민과 동일시하고 선출된 권력이라는 명분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앞세우는 순간부터 독재자와 닮아간다. 권한 행사는 헌법과 법률로 제한되고 사적 이익과 충돌되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 위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 정책은 국민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반면, 상대편 정책은 정략적인 것으로 단정한다. 반대파에 무관심, 무례, 적대감도 드러낸다. 이를 전임 대통령을 통해 충분히 봤다. 거기에 국민이 채찍을 든 덕분에, 이례적으로 미래가 아닌 과거에 대한 심판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다시 국민의 이름을 들먹이며 국민을 능욕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보복 정치도 진정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선거운동 때까지 내란 종식·응징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우클릭 실용주의보다 우선시한 선거 전략이었다. 막판까지도 “국민의힘의 누군가가 동조했다고 생각한다. 다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특검을 주장했다. “그건 정치 보복이 아니다.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고도 했다. 실정법을 어겼으면 단죄하는 게 옳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면 된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누구 한 사람, 또는 진영이 “정의를 독점할 수는 없다. 정의는 합의된 절차적 과정에서 얻어지는 가변적 개념이다”(송호근 한림대 도헌학술원장). 과거 ‘적폐 청산’이 되레 적폐를 누적시켰음에 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힘센 권력집단이 규정한 정의는 억압이다.”
보복이 아니라면 자신에 대해서도 법의 원칙대로 해야 한다. 곧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 차질’을 이유로 진행 중인 재판들을 중지하거나 면소를 위해 나설 것이다. 이를 위한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 통과만 남겨놓고 있다. 대통령 불소추 특권과 재판 속행이 상충한다면, 위인설법이 아닌 사법 시스템 내에서 답을 구하는 게 정도다. 조만간 헌법재판관 2명에 대한 인선을 진행한다는데, 절차대로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면 될 일이다. 판결 전에 대법원과 소통했다는 식의 ‘정치 거래’로 보는 인식으론 사법 개혁은커녕 불신·불복 사회만 남게 된다.
국회를 ‘통법부’로 전락시키는 일 또한 하면 안 된다. 공약 실행을 위한 입법 과제들이 있다. 전임 정부가 40여 차례 거부권을 행사하게 했던 입법 폭주의 장애물이 이젠 없다. ‘셀프 사면법’까지 만들 수 있다. 정치 회복 주장이 진심이라면,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민주당에도 ‘일극 체제’를 벗어나 정당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 대통령은 “한 사회의 운명은 권력을 가진 공직자의 마인드와 가치, 열정에 달려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나, 지금 시험대에 오른 핵심 덕목은 권력의 자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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