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 세력에 있어서 이번 대선 패배는 ‘국민의힘의 자멸’이라고 할 정도로 자초한 것이다. 멀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 가까이는 비상계엄 및 탄핵 이후의 무원칙한 대응, 더 가까이는 황당한 후보 교체 소동 등에 이르기까지 보수의 원칙과 품격을 내팽개친 데 따른 귀결이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막판에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해 그나마 표차를 줄였고, 이재명 대통령의 득표율 50% 돌파를 가까스로 저지했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49.49%로서, 이 대통령의 49.42%와 초박빙을 이룬다. 따라서 국힘의 패배일 뿐, 보수 성향 국민의 패배는 아니다.

이 대통령 당선의 최대 ‘공신’은 윤 전 대통령과 호가호위 세력이다. 대선 패배는 12·3 계엄 선포 때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지만, 다수 국민의 여망과 반대로 움직였다. 첫째,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실패했다. 강경 보수에 이끌려 길거리 투쟁에 몰입하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도 망상에 사로잡혀 끝까지 발목을 잡다가 뒤늦게 탈당했다. 김 후보도 우유부단했다. 둘째, 당권을 장악한 친윤과 영남 기득권 세력의 책임이 그 다음으로 무겁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내세워 경선에 승리하고도 단일화를 거부한 김 후보도, 한 전 총리를 내세워 당권 유지를 노렸던 친윤 인사들도 합당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부정선거 음모론과 극우 세력에 휘둘리면서 온건 보수와 중도 세력을 포용하지 못했다. 선거 패배 책임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정선거 주장에 기대어 책임을 회피하는 버릇을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보수 정치의 재건과 정상화가 시급하다. 꼭 1년 앞인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만큼 재창당 수준의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한 전당대회를 늦춰선 안 된다. 또 다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원내대표의 당대표대행 등의 꼼수를 부려선 더 더욱 안 된다. ‘한덕수 카드’를 부결시킨 당원 의견도, 대선 민심도 대체로 일치한다. 친윤 핵심 인사들은 정계 은퇴 또는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 공천=당선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무책임·웰빙 정당의 근본 원인이 된 영남지역 의원들에 대해선 두 차례만 영남 출마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때다. 당 지도부의 과감한 세대교체 당위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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