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아이유 ‘네버 엔딩 스토리’

끝내주는 것들은 매혹적이면서 치명적이다. 왜 하필 끝내준다고 표현할까. 가수들 여럿 나오는 무대에서 누구를 마지막에 내세우는 게 합당할지 PD는 고민하지 않는다. 출연자 명단을 보면 답이 나온다. 본인(그 시절 가장 인기 있는 사람)도 차례를 짐작한다. 어쩌다 순서가 꼬여서 중간에 노래하고 퇴장한다면 객석의 팬들마저 따라서 나가버리는 불상사를 제작진은 각오해야 한다. 난형난제(?)가 동시에 출연하는 음악회에서 누구를 엔딩(끝)으로 할지 우왕좌왕하다가 소속사와 부딪쳤던 일도 떠오른다. “우리 가수가 끝이 아니면 여기 출연 못 합니다.” 결국 여기가 아닌 ‘거기’(다른 방송사)로 가버렸던 황당한 사례도 있었다.
끝내주는 사람이라고 끝이 없으랴. 속 썩이던 사람은 세상이 아니라 세월이 해결해준다. 끝내주던 사람(Top of the World)의 미래는 결국 끝난 사람(The End of the World)이다. 아쉽고 서럽다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러 다닐 게 아니라 불후의 명품(명언 명곡 명작 명화)을 세상에 남기는 편이 명예롭고 슬기롭다. 명언의 경우 그 말을 처음 한 자보다는 그 말에 걸맞은 삶을 산 사람이 진짜 주인이 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이 아니다. 시중에 떠돌던 말을 청년들에게 한 것뿐인데 그의 철학과 생애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구도의 과정과 일치(지행합일)했기에 역사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명곡은 어떤가. 같은 요리책을 읽고도 요리사에 따라 맛이 다르듯이 노래의 가치는 악보를 그린 사람보다 그 노래에 담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가수의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어느 가수가 처음 녹음했느냐(원곡 가수)도 중요하지만 누가 나중에 그 노래를 다르게(자기 호흡으로) 불러 팬들의 마음을 흔들고 확장하느냐도 무시 못 한다. 가수의 영향력과 노래의 파급력이 오래 지속될수록 이른바 생명력 있는(불후:不朽 썩지 않는) 노래로 거듭나는 것이다. 비틀스의 명곡 ‘헤이 주드’의 ‘슬픈 노래를 받아서 더 낫게 만들라’(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는 문장이야말로 리메이크의 명분과 목표로 삼을 만한 구절이다.
아이유는 꽃 갈피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 앨범을 시리즈로 내는 중인데 이번이 세 번째다. 낡은 책들을 버리려고 먼지 자욱한 서가를 정리하다가 책갈피 속에서 오래전에 쓴 연애편지를 발견한 기분은 어떨까. 감정은 용솟음치고 용기는 사그라들던 시절에 수기로 썼던 그 편지는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네버 엔딩 스토리’) 쓸쓸히 예감한다. 아이유가 고상하게 절제된 호소력으로 심금을 후벼 파니 휴화산이던 각자의 청춘이 마침내 ‘부활’(원곡 가수)한다.

연애하던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영화가 끝나면 그건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영화는 두 시간에 불과하고 현실은 그보다 훨씬 길다. 너저분한 일들도 수두룩하게 벌어진다. 사계절 음악동네엔 해피엔딩과 네버엔딩 사이에 ‘벚꽃엔딩’(버스커 버스커)이란 게 있다. 이 노래는 시작할 때 ‘그대여’를 다정하게 무려 5번이나 부른다. 그런 다음 호흡을 가다듬고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라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물고 싶다면 노래에서 지혜를 얻자. 오늘부터 책갈피마다 마른 꽃잎 한 장씩 끼워 넣고 어느 날 다 차면 다시 한 장씩 한 장씩 빼는 건 어떨까. 청춘은 짧고 추억은 길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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