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 엑시트’ 펴낸 이철승 교수

 

386·벼농사 체제 분석 이어

‘불평등 3부작 시리즈’ 완결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오픈 엑시트’를 출간해 ‘불평등 3부작’을 마무리지었다.   백동현 기자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오픈 엑시트’를 출간해 ‘불평등 3부작’을 마무리지었다. 백동현 기자

퇴사를 꿈꾸는가. 이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는 않은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한국 사회에는 이직을 준비하는 2030세대와 제2의 직업을 알아보는 5060세대가 공존한다.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이 시기,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바로 이 ‘탈출’이라는 선택지, 즉 ‘엑시트 옵션’(exit option)을 신간 ‘오픈 엑시트’(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설명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더 많은 연봉을 주고 더 많이 부려먹는 시스템, 그런 가장 한국적인 조직 문화로는 안 되는 그 시기가 마침내 왔다”고 말했다.

앞서 ‘불평등의 세대’를 통해 386세대의 장기 독점을, ‘쌀, 재난, 국가’를 통해서는 동아시아의 벼농사 체제를 분석한 그는 이 ‘불평등 3부작’의 완결편 격인 이번 책에서 세대와 체제를 넘어선 미래를 그렸다. 그 중심에는 ‘엑시트’가 있다. 이 교수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선 진작부터 이뤄지고 있다”며 “미국은 연봉이 아닌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직장을 옮긴다. 이를테면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 혹은 문화가 풍성한 뉴욕이나 동북부에서 살고 싶으면 연봉과 무관하게 그곳으로 옮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어디서 ‘엑시트’하고 있는가. 이 교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탈출할 곳은 단순히 회사가 아닌 ‘소셜 케이지’다. 조직을 벗어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대조적-환경적 장벽’을 그는 ‘소셜 케이지’라고 부른다. 여기엔 한국적인 조직 문화, 연공제, 가부장제, 가족주의까지 수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다만, 한국의 노동자가 이 같은 소셜 케이지에 갇히는 이유는 폐쇄적인 국내 노동시장에 있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의 확장, 그리고 이민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일본, 대만과 같은 주변 국가로 노동시장을 확대해 케이지를 넓히고 이민자들을 수용해 그 규모를 키우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한데 한국에선 해고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해고를 통한 유연화가 아닌 노동시장의 사이즈를 키우는 방식을 고민했다”며 “특히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언어적 장벽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과 같이 한국에 대응하는 복지체계에 있는 국가와 노동시장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제안은 단순히 구상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변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외기업으로의 진출은 진작 시작됐고 이주노동자가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는 특히 이민문제에 대해 “제도적으로 지금부터 정비하지 않으면 ‘게토화’될 수 있다”며 “프랑스의 경우, 파리 외곽에 위치한 이민자 거주지역이 있는데 실업률이 어마어마하게 높다. 이처럼 서로 구분된 채 사회가 발전하면 이민자를 증오하는 극우정치가 활개를 치고 이민자는 그 안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다.

변화는 시작됐고 제도는 아직이다. 그는 “개인들이 노동시장에서 엑시트하고 다시 진입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제도들을 고민해봐야 한다”며 “기업에서도 90년대생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최대 화두인데 그러기 위해선 연봉이 아닌 직장문화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새 정부가 들어섰다.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인구 규모가 작은 다음 세대에 부담을 지우고 기성세대는 큰 부담을 지지 않는 연금개혁에 대해선 다시 검토를 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수적열위의 아랫세대가 압도적 다수의 윗세대를 지탱하는 사회적 가족주의, 그 소셜 케이지를 넘어서는 것이 공정한 복지 국가로의 첫걸음이다.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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