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유럽연합(EU)의 중심축은 누가 뭐래도 독일과 프랑스다. 제2차 대전 때 독일 침공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의 나라 프랑스는 전쟁 후 엘리제조약 등을 통해 독일과 화해하면서 유럽 통합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이탈리아는 프·독 주도의 유럽 통합 논의에 초기부터 적극 참여하면서 EU의 명실상부한 넘버3 국가가 됐다. 세 나라는 EU의 트로이카로 불리며 선진국 클럽인 주요 7개국 모임의 유럽 대표 격으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하는 극우파 조르자 멜로니 총리 시대 이탈리아는 유럽 중심에서 밀려나는 기류가 역력하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5월 6일 의회에서 공식 선출된 후 프랑스와 폴란드를 찾았다. 메르츠 총리는 취임식에서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한 유럽 구축’을 선언한 뒤 파리와 바르샤바를 방문했고, 이어 두 나라 정상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메르츠 총리의 첫 행보에서 이탈리아가 배제되고 폴란드가 들어간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코노미스트는 ‘폴란드의 놀라운 부상’(5월 24일자)이란 기사에서 ‘지구상에서 2번이나 지워졌고, 제2차 대전 후엔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나라가 제조업 부흥에 힘입어 영국과 독일, 프랑스보다 큰 군대를 갖게 되면서 유럽 안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했다. EU는 물론 나토(NATO)에서도 이탈리아의 위상이 쪼그라들면서 모두 폴란드와의 협력을 우선적으로 얘기한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 국방부 인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엘리 래트너는 최근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태평양 방위조약의 사례’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아시아 동맹이 필요하다’며 ‘태평양 방위조약(Pacific Defense Pact)’을 제안한 뒤 대상 국가로 일본·호주·필리핀을 꼽았다. 일본·호주와는 쿼드(Quad)를 형성해 그렇다 해도, 아시아 핵심 동맹국 한국이 빠지고 필리핀이 들어간 것은 기가 막히다. 래트너는 한국 배제 이유와 관련, ‘명백한 후보국이나 대중(對中) 견제와 대일(對日) 협력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친중·반일 회귀에 대한 우려가 외교안보적 배제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 한국이 ‘아시아의 이탈리아’가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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