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출범 일주일째인 이재명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대로 빠르게 재정정책과 거버넌스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예산재정정책을 포괄적으로 담당하는 재정기획관을 임명했고, 이를 위한 직제 개편안도 추진 중이다. 또, 이재명 대통령은 9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를 주재하며 대규모 추경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러한 두 가지 접근은 연관되면서도 하나의 가치이자 방향성으로 수렴되는데, 그것은 바로 ‘재정정책의 정치화’이다. 대통령실에 재정기획관을 다시 제도화하는 것은 대통령실이 예산편성에 국정철학이 부합할 수 있도록 개입하고 감독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대규모 추경을 추진한다는 것도 제대로된 예산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치적인 사업이 대거 편성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반적인 재정의 정치화를 의미한다.

대통령실에 재정기획관을 신설하고 예산편성의 방향과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반영한 정치집단의 의사가 적극 반영된다는 점에서 재정정책의 민주화와 책임성 강화에 기여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합리적인 사업 평가에 근간한 예산심사가 대통령실의 정치적 포퓰리즘에 의해 크게 왜곡되는 위험도 피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 선진국들도 모두 겪은 문제로, 이들 국가는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의 정치적 권력과 관료제 기반의 재정 당국 권한 간에 균형을 추구해 왔다. 일단 의회가 재정정책 결정권을 갖도록 해 대통령실을 충분히 견제하게 하고, 대통령실이 재정정책의 큰 틀은 정하되 개별 사업은 재정 당국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보장했다. 그러니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대통령 관심 사업’ ‘영부인 사업’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지난 5월 초 대선 과정에서 13조8000억 원의 1차 추경안을 국회에서 처리했는데, 한 달여 만에 다시 나선 2차 추경은 정치적 색깔이 훨씬 강해졌다. 이 대통령은 경기회복과 소비 진작 차원에서 속도감 있는 추경 편성을 주문하면서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지원을 우선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중산층에 전국민지원금을 뿌려 표(票)를 얻을 궁리를 하는 중이다. 고물가에 집중으로 고통받는 취약계층과 폐업 위기의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직접 100만 원씩 지원해줄 돈을 10만 원씩 쪼개 중산층에 나눠준다는, 앞에선 약자를 내세우고 뒤에선 부자 호주머니 채우는 정치적 사기이다.

합리성이 지배하는 선진국에서 이런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통할 리 없다. 전국민지원금이라는 정책은 현금 보유가 매우 적고 모기지라는 제도가 광범위한 미국을 제외한 어느 선진국에도 없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제대로 된 정책 분석과 합리적 사고를 한다면 이런 정책이 논의조차 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엄격한 관리, 합리적인 정책 분석에 기반한 사업 개발이 필요하고, 예산분석기관과 언론·미디어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비판이 제도화돼야 한다.

재정정책에는 정치적인 책임성이 있어야 하지만 합리성과 관료제에 의한 통제도 꼭 필요하다. 마침 어제 대통령이 물가 관리를 지시했는데 추경 만능주의, 확장재정 아래서 물가를 잡는 것은 모순이다. 신중한 재정정책만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낳을 것이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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