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문화부 차장

이게 다 ‘회전문 관객’들 덕이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탄생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인기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도, 지난 9일(현지시간) 공연계 아카데미상 격인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들이었다. 이 뮤지컬의 선전을 두고 ‘애초 브로드웨이를 겨냥하고 개발했다’ ‘한국적 서사와 현지화 전략이 통했다’ ‘이제 뮤지컬도 K-팝, 영화, 드라마처럼 K-콘텐츠 산업의 한 축이 됐다’는 분석과 평가, 전망이 이어진다. 따라서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제언도.

맞는 말이고, 기분 좋은 얘기다. 그러나 이 뮤지컬의 토니상 수상에 진정한 공신을 꼽으라면, 그러니까 K-뮤지컬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진짜 힘이라고 한다면, 그건 역시 2016년 초연부터 10여 년간 객석을 빈틈없이 채워 준 ‘뮤덕(뮤지컬 덕후)’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회전문 돌듯’ 한 작품을 수십 회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들의 공이 크다. 관객 없는 공연에 투자자가 나타날 리 없고, 그런 공연에 브로드웨이 진출 기회가 올 수 없다. 관객이 외면한 공연은 순식간에 무대에서 사라지고 마니까.

회전문 관객은 한국 공연 시장의 큰 특징 중 하나다. 내용을 이미 다 꿰고, 노래와 대사도 외워버릴 정도로 한 작품을 깊게 파는 이들은 일반 관객의 눈엔 다소 ‘별난 사람’으로 보인다. 이들은 몰입형·관찰형 관람을 추구한다. 그래서 숨소리조차 안 낸다는, 이른바 ‘시체 관극’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는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됐는데, 그 배타적 관람 태도는 차치하고, 이들이 회전문을 도는 동안, 즉 같은 공연을 반복해 본 덕에 대학로의 작은 제작사들은 수익 구조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었다. 이미 대학로 뮤지컬은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팬덤 시장으로 재편됐는데, 제작사들은 회전문 관객의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고, 점점 더 그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회전문을 돌게 할 수 있을지에 골몰하게 됐다. 그것이 때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진화에 가까워, 장기적으로 전체 공연계의 양적·질적 성장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외형적으로는 ‘어쩌면 해피엔딩’ 역시 대학로 ‘회전문 공연’의 대표 사례다. 물론, 지금부턴 ‘가장 성공한 사례’라는 수식어도 따라오게 됐다.

다종다양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 영역에서, 큰 뮤지컬 작은 뮤지컬에 우열을 나눌 수 없고, 취향에 따라 이동하는 관객들에도 가치 판단은 금물이다. 다만, 한국의 독특한 공연 문화에서 태어난 뮤지컬이 해외에서도 흥행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니, 그동안 회전문 관객을 바라보던 복잡다단한 시선을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대학로 역시 생물처럼 그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가는 중일지도. 업계 안팎에서 회전문 공연은 성장도 진화도 아니라고 자조하고 회의했는데, 놀랍게도 지금 현지에도 회전문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뮤지컬 인기 요인으로 ‘한국적 속성’을 꼽던데, 이쯤 되면 가장 한국적인 건 팬덤을 형성하는 힘이 아닐까. 참고로, 근미래 AI 로봇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뮤지컬의 한국 팬덤명은 ‘헬퍼봇’, 미국 팬덤명은 ‘반딧불이(fireflies)’다.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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