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국채 금리 발작에 손든 트럼프

통화정책 흔드는 채권 자경단

무너지는 미일 국채 안전 신화

 

구멍 뚫린 환율, 경제 환경 급변

준기축통화국에도 못 끼이는 韓

재정중독과 포퓰리즘이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던진 지 일주일 만에 손을 들었다. 주식·달러 폭락과 함께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4%에서 4.5%로 뛴(국채값 하락) 게 결정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젯밤 국채 시장을 보니 사람들이 너무 불안해하더라”며 강경 입장을 뒤집었다. 주택담보대출 등 많은 금융 상품이 10년물 국채에 연동돼 있어 전방위로 불똥이 튄 것이다.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 정부부채(35조 달러)의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감세 공약도 물 건너간다.

3월 10일에는 또 다른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한국과 일본의 국채 금리가 역전됐다.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25년 만의 최고치인 2.88%로 치솟았다. 반면, 한국은 기준금리 인하로 30년물 국채 금리가 2.74%까지 내려왔다. 일본은행은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5%로 오르면서 추가 금리 인상과 함께 테이퍼링(보유 자산 축소)을 지속할 방침이다. 양국 금리 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양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실질경제(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2.4%(연율)로 뛰었다. 잠재성장률이 곤두박질하는 한국과 대비된다. 한국은행은 우리의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207.4%로 일본 최고 버블기였던 1994년 수준(213.2%)에 육박한다고 경고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물가·부채·생산연령인구 등 10개 항목을 비교한 ‘일본화 지수’에서 한국을 태국과 중국에 이어 3위로 평가했다. 한국판 ‘잃어버린 30년’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 관세 폭탄을 투하하며 “해방의 날”이라 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국의 ‘안전 신화’가 무너진 날이라는 점이다. ‘셀 아메리카(Sell America)’로 미 국채와 달러가 동반 폭락하면서 ‘미 국채 금리가 오르면(국채값 하락) 달러는 강세’라는 30년 공식이 깨졌다. 덩달아 최후의 도피처였던 일본 국채도 불안한 움직임이다. 미·일의 만성적 재정 적자가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는 시장의 ‘재정 우위’ 흐름이 뚜렷해졌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대표는 “채권 자경단이 돌아왔다”며 “미·일 국채의 거대한 균열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보다 안전한 금(金)이나 독일·스위스 국채로 몰려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첫 경제 라인 인선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재정 중독과 포퓰리즘에 젖어 있는 분위기가 문제다. 2022년 영국의 실패는 반면교사다. 당시 리즈 트러스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파동을 앞세워 감세안을 꺼냈지만, 닷새 만에 3.473%였던 영국 3년물 국채 금리가 4.670%로 1%포인트 넘게 뛰면서 파국을 맞았다. 영국 연기금들이 국채에 연계해 엄청난 규모의 파생투자(LDI)를 해오다 마진 콜에 몰려 파산에 직면했다.

영국은 결국 중앙은행의 무제한 통화 발행과 국채 매입이란 극약 처방으로 간신히 재앙은 피했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4.25%의 고금리에 짓눌려 있다. 유럽 기준금리 2.15%의 거의 두 배다. 미국도 미 국채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 코인’에 목을 매고 있다. 테더의 경우 이미 84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해 세계 9위에 올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028년까지 스테이블 코인이 2조 달러의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일본(1조1308억 달러)과 중국(7654억 달러)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규모다.

이에 비해 한국은 준기축통화국에도 끼이지 못하는 신세다. 환율 등 경제 환경도 급변했다. 2010년 이후 15년간 연평균 429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지만, 원·달러 환율은 거꾸로 1100원에서 1354원으로 올랐다.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에서 ‘2021년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이 600억 달러나 늘어나 무역수지 흑자(293억 달러)의 두 배를 넘었다’며 국민연금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여기에 서학개미들이 연평균 150억 달러의 해외 주식을 순매입하고, 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짓는 데 1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사방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칙적 행보로 관세 전쟁이 언제 통화 전쟁으로 번질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어느 때보다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 섣부른 정책 실험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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