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의 Deep Read - 이재명 정부와 ‘경제’

한국경제 최대 도전은 민간부채 오버행 따른 저성장… 정부재정이 유일한 성장 불쏘시개

‘확장적 재정 지속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은 금물… 혁신 없는 빚 의존 성장론으론 미래 없어

6·3 대선의 막이 내리면서 큰 폭으로 환율은 내렸고 주가는 올랐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짓눌렀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외환·금융시장이 반등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관련 대통령실 조직과 참모 인선을 보건대 확장적 재정을 통한 성장에 경제정책의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의 함정

이 정부가 성장과 재정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경제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저성장의 함정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은 2010년대부터 추세가 뚜렷해져 2022년 기준금리가 대폭 오르면서 과도한 빚 부담으로 소비와 투자가 억제돼 성장이 위축되는 ‘부채 오버행’이 일어난 결과다. 긴 흐름에서 한국 경제를 보자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20년이 넘도록 ‘빚에 의존한 성장’을 추구한 결과, 중단 없이 늘어난 민간부문의 빚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제 성장의 불쏘시개로 남은 것은 정부재정이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정부의 빚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4% 남짓하며 선진국 수준(104%)의 5분의 2에 불과하다. 신흥국(65%)보다도 20%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재정수지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다른 시각도 있겠으나 상대적으로 정부재정은 여유가 있다.

이렇게 GDP 대비 정부 빚이 낮은 수준이기는 하나 늘어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2000년 초 대비 5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선진국은 1.4배에 그쳤다. 신흥국 통계가 생산된 2008년을 기준으로 하면 2배 남짓한데 신흥국(1.8배)보다도 높다. 이처럼 정부 빚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복지 등 늘어난 재정 수요의 탓도 있겠지만 채무상환능력의 지표인 GDP 대비 정부 빚이 급증하는 현상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한 해 동안 늘어난 정부 빚은 당해 연도 각종 지출에서 조세 등 수입을 차감한 값, 즉 본원적 재정적자에 기존 채무에 대한 지급이자를 합친 값과 같다. 여기서 GDP 대비 정부 빚(D)의 변동은 GDP 성장률과 빚의 증가율이 결정하는데 본원적 재정적자(PD) 외에도 성장률(g)과 국채수익률(r)에 의존한다. 이는 위의 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빚의 지속가능성

실질금리와 성장률의 차이, 즉 r-g는 빚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본원적 재정수지가 균형이라고 해도 r-g>0이라면 GDP 대비 정부 빚은 증가한다. 반대로 r-g<0일 때 GDP 대비 정부 빚은 감소한다. 그러므로 정부 빚의 지속가능성은 (r-g)가 핵심이다. 비록 본원적 재정수지가 흑자라고 해도 r이 g보다 충분히 크다면 GDP 대비 국가채무가 증가해 재정 상태는 악화된다.

회원국의 공공부문 통계를 제공하는 IMF 재정모니터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의 변동이 본원적 재정적자를 반영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제시한 식의 오른쪽 (r-g)가 포함된 첫째 항 때문이다. 실질금리가 낮을수록, 성장률이 높을수록 정부는 빚을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 저성장에 진입한 시기에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본원적 재정적자보다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피터슨연구소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교수는 저서 ‘저금리하의 재정정책’(2023)에서 저금리는 공공부채 재원을 활용해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저금리가 부채비용을 낮춰 재정 및 복지 부담을 모두 줄인다는 요지다. 특히 미 국채가 세계의 안전자산이라는 사실로부터 확장적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기했다. r-g<0의 높은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 팬데믹 기간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낙관론을 무색하게 했다. 실질금리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희박하고 고성장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채권투자자들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2022년 당시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감세정책을 발표하면서 길트(영국 국채) 수익률이 폭등하고 파운드화가 폭락하자 결국 감세안은 철회됐고 총리는 사임했다.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상호관세를 선포한 후 국채수익률이 급등했고 달러화 가치는 하락했는데, 이는 국채의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진 탓이다. 지난달 말 일본 장기국채 입찰 부진으로 장기물 수익률이 폭등하자 일본중앙은행이 테이퍼링 속도를 완화하는 등 정책 재조정이 일어났다.

◇재정이란 불쏘시개

미 국채뿐 아니라 길트, 일본 국채 모두 선진국 고신용자산이라는 기본적 특성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새로운 레짐에서 정책이 조율되지 않고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가차 없이 징벌적 가격 신호를 보내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 국채는 더 이상 무조건적 안전자산이 아니다.

한국 국채는 평가사에 따른 차이는 있으나 영국이나 프랑스 수준의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고채의 23%를 보유하고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될 정도로 수요 기반이 탄탄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선진국을 포함해 상당수 국가의 보유 외환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므로 r-g>0은 r 때문이 아니다. g 때문이다.

저성장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이다. 이제 빚잔치에 이어 인구 고령화에 따른 본격적인 생산인구 감소가 기다리고 있다. 전체 인구 대비 생산인구 감소는 성장 손실을 초래하는 역 인구배당을 동반한다. 인구학자들은 2020∼2050년 기간에 한국의 1인당 GDP 성장손실이 연 1.7%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재정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불쏘시개로 유일하게 남은 실탄이다. 그런 만큼 이 실탄은 현명하게 써야 한다. 1960∼1970년대에 고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 주도의 성장모델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출시장에서 그 경쟁력을 검증받지 못한 기업은 도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명을 다한 고성장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모델, 또 다른 혁신을 내놓지 못하고 빚에 의존한 성장을 추구한다면 힘든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새로운 레짐에서 정부가 현재의 높은 신용도를 유지하고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적 위험 관리, 안정적 거시경제 운영, 조화롭고 일관성 있는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장과의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

◇혁신 함께 가야

덧붙여, 환율은 시장에 대한 새 정부의 신뢰지표다. 현재 원화가치는 엔화 다음으로 하락 폭이 크다. 원화 약세가 여전한 것은 저성장 우려에 가장 큰 요인이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뀔 때 환율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 용어설명

‘오버행’은 주식시장에서 언제든지 매물로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 ‘부채 오버행’ 역시 언제든지 늘어날 수 있는 과잉 부채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

‘확장적 재정’이란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 저성장 극복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 확대가 필요하나 재정건전성 점검과 혁신성장이 함께 고려돼야.

■ 세줄 요약

저성장의 함정: 이재명 정부가 성장과 재정을 강조한 것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 빠지고 있기 때문. 한국 경제는 그간 ‘빚에 의존한 성장’을 추구한 결과, 중단 없이 늘어난 민간부채 오버행에 발목 잡힌 형국.

빚의 지속가능성: 본원적 재정수지가 흑자라고 해도 국채수익률(r)이 성장률(g)보다 크다면 GDP 대비 국가채무가 증가해 재정 상태는 악화. 이 경우 정부 빚에 의존한 확장적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짐.

재정이란 불쏘시개: 재정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유일한 불쏘시개지만 국채가 무조건적인 안전자산이 될 수는 없어. 새로운 성장모델과 혁신성장 없는 정부 빚 의존 정책만으로는 힘든 미래를 맞이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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