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국민주권정부 내건 李대통령

권력의 사유화 막겠다는 취지

정치인의 입법 남용이 더 문제

 

국민주권의 실현 방법이 본질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 보완

권력분립 흔들면 독재로 귀결

새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별칭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민주권주의를 관철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15일 전남 순천 연향동 거리 유세에서 “최초의 민주정부는 국민의 정부라고 불렸고, 다음 정부는 참여정부라고 불렸다”며 “다음 정부 이름은 국민주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왜 그럴까? 주인-대리인 관계에서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주인인 국민의 이익 대신 자신의 사적 이익을 탐하고 부패·비리를 저지르며 민의를 배신하면서 무너지는 대의제의 한계를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박근혜의 국정농단, 윤석열의 비상계엄 등을 보면서 ‘공공의 것’을 뜻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나온 공권력을 사유화하거나 대통령의 사익을 위해 남용하는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권력자들과 직권남용·직무유기로 민의를 배신한 대리인을 파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감한다.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선출된 자가 집권 후 국민의 동의 없이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승리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바꾸고, 사법부를 개편하는 등 비슷한 행태가 각국에서 진행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선출직 정치인들이 심판의 판정을 피하기 위해 법률을 바꾸는 방식으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대의제의 위기는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법을 수호하는 심판을 압박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꿀 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심판이란, 법원·검찰·정보기관·국세청·규제기관 등을 가리킨다. 결국 민주주의의 붕괴는,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이처럼 양심도, 견제도, 시민적 숙의 과정도 없이 당파적 이익을 위해 게임의 룰을 진영 논리로 바꾸면서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할 때 발생한다. 대안으로서 국민주권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이 권력(헌법 제정 권력과 일체의 국가권력)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행사는 직접적인 국민투표에 의해서이거나 간접적인 국민대표에 의해 행해짐으로써 현실화한다.

우리 헌법은 제1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국민주권주의라는 말에 동의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놓고 이견이 생길 수 있다. 즉, 국민주권주의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이 점에서 방법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방법론에서 대의정부나 대표자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를 아예 부정하면서 포퓰리즘에서 강조하는 ‘인민민주주의’로 대체하거나 군중집회, 팬덤정치로 대신할 때 ‘파벌의 해악’ 문제로 성공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은 국민주권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국회·대통령·법원·헌법재판소·지방자치 등 권력분립에 따라 간접으로 대표자를 선출해서 구현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주로 하되,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를 가미하고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 관점에서 국민에 대한 국회의원의 위임관계를 명령적 위임(대행인)이 아니라, 자유위임(수탁인)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만약 국민주권주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 자유위임의 대의정부나 대표자 및 권력분립을 부정하고 그 대신 대화와 토론 및 숙의가 없는 인민재판식 군중집회와 일극 체제의 대중정당을 앞세운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국민주권주의는 민중선동가 중심의 인민민주주의로 돌변해 결국 중우정과 참주정에 따른 위험한 독재국가의 출현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파적 진영 논리에 따른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명분 삼아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는 인민민주주의 시도는 위험하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국민주권주의의 성공적 구현 조건은 대의제 부정이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주민자치제·원내정당화·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한 보완이다. 따라서 국회·국무회의·청와대에서 숙의가 필요하다. 즉, 당론 기속의 최소화, 자유투표의 확대, 토론 활성화, 숙의 공론화가 요구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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