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가 만난 사람 - ‘레슨의 신’ 임진한 프로

 

Q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있어 ‘골프란?’

 

1977년 프로입문… 91년 日진출

양용은 · 허석호 · 박인비 등 키워

 

프로 같은 자세 만들어 내려면

매일 공 1000개씩 3년은 쳐야

 

스윙폼은 각자 자기의 틀 있는것

예쁜 동작 집착말고 편한 스윙을

 

나이들면 두뇌회전 늦고 몸 굳어

그대로 받아들여야 골프 편해져

임진한 프로가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신의 사무실 ‘에이지슈트’에서 웨지샷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임진한 프로가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신의 사무실 ‘에이지슈트’에서 웨지샷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인터뷰 = 방승배 체육부장, 정리 = 오해원 기자

‘레슨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올해 68세의 임진한 프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골프 교습가로서 그는 여전히 전성기다. 젊은 교습가들이 많아지면서 ‘구식’이라며 간혹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스윙에 대한 가장 명쾌한 처방을 내려주기 때문에 그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임진한 클라스’의 구독자는 52만 명이다. 임 프로와의 만남은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그의 사무실 ‘에이지슈트’에서 진행됐다. 그는 최근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이름처럼 에이지슈트(자신의 나이보다 적은 타수·67타 이하)를 쳤고, 드라이버 250∼260야드를 너끈히 날린다. 여기에 국내외 가리지 않는 방송과 레슨 등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한다. 특별한 운동 없이도 이 같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프로의 꿈을 꾸며 매일 리어카 2대 분량의 볼을 치며 흘렸던 땀 덕분이라고 한다.

교습가로 더 유명해졌지만 그는 국내에서 5승, 일본 등 해외에서 3승 등 8승을 올린 실력파 투어프로였다. 대중을 상대로 한 교습을 하기 이전에는 양용은·허석호·배상문·박인비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프로들을 키운 엘리트선수 제조기였다. 지금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안병훈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며 임 프로의 지도를 받았다. 임 프로는 아마추어 골퍼들의 스윙과 멘털에 대해 “예쁜 폼보다 몸에 맞는 편한 스윙을 해야 한다”면서 “스윙 전 머릿속의 걱정을 지우는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한다. 동반자를 이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골프가 소수의 스포츠였던 시절인데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어렸을 때 부산 해운대에 살았는데 옆집에 김석봉 프로가 살았다. 이분이 외국에 대회를 자주 나가더라. 어린 마음에 골프 프로가 되면 외국에 많이 가겠구나 싶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래 컨트리클럽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당시 동래 컨트리클럽은 허재현 프로가 헤드프로셨다. 내 제자이기도 한 허석호의 아버지다. 연습생인 내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을 칠 수 있게 해주셨다. 연습장에서 하루 종일 공만 치는 행운 덕에 3∼4년 만에 곧바로 프로가 될 수 있었다. 연습생 시절엔 하루에 리어카로 두 대씩 공을 쳤다. 그렇게 공을 다 치고 나선 9홀을 돌았다. 그러니 골프가 빨리 늘었다. 그러던 중 이병두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이 부산에 오셔서 나와 골프를 한번 치고는 서울로 올라오셔서 로얄CC(지금의 레이크우드)에서 연습을 하게 해주었다. 당시 이 회장님은 로얄CC 직원에게 임진한이 공 1000개를 때리고 18홀을 돌고 오지 않으면 밥도 주지 마라고 하셨을 정도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1977년에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당시 프로대회는 어땠나.

“프로가 되고 첫 시합을 1978년 남서울CC에서 했다. 그때는 오픈대회가 없고 프로들의 월례 경기가 있었다. 첫 시합에서 5등 하고 상금 2만8000원을 받았다. 한국에서 버는 상금으로는 살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에 일본 던롭오픈에 갔더니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일본골프협회장에게 1988년에 일본에 가서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그랬더니 2년 만에 답장이 와서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1991년에 가서 동남아, 대만의 프로들을 제치고 수석 합격했다. 그리고 1991년부터 5년 동안 일본에서 대회에 나갔다. 그때가 내 나이 36∼37살 때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1년에 대회가 7개 열리는데 일본은 42개가 열렸다. 아무리 일본이 경제 대국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대회가 열리는지 공부하고 싶었다. 내가 선수로서 실패한다고 해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제자들을 가르쳤다. 비결이 있다면.

“일본에서 5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해보니 우리나라의 골프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공만 쳤지 체력 훈련은 전혀 하질 않았다. 1년에 대회가 7개밖에 없으니 체력 훈련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매주 대회가 있으니 체력 훈련이 필수였다. 그래서 국내에 처음으로 체력 훈련을 도입했다. 주니어 선수들 부모들은 ‘임진한이 미쳤다’고 했다. 골프만 시키면 되는데 웨이트트레이닝을 왜 하느냐고 항의했다. 그때 허석호·양용은·장익제·남기협 등이 훈련할 때인데 석 달을 하고 나니 거리가 20m씩 늘었다. 지금은 모든 골프선수가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그걸 내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이 있다.”

―일반 아마추어 대중들을 위한 레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선수들만 가르치다 보니 내 인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만나는 사람은 가르치는 선수와 그들의 부모뿐이었다.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이라는 생각인데 나는 어려서부터 골프만 했으니 재산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안병훈이 내 마지막 제자다. 미국에 가기 전 중학생 때까지 가르치고 내 인생을 찾고 싶어 아마추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 대상의 레슨이 성공한 비결은 뭔가.

“나도 리어카로 두 대씩 공을 쳐가며 프로가 됐다. 그때 느낀 것이 얼마나 많겠나. 아마추어를 가르치려면 아마추어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모든 동작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쉬운 길을 찾아 주려 했다. 아마추어는 스윙하는 폼이 예쁠 수 없다. 프로 같은 자세를 만들려면 하루에 최소 1000개씩, 3년은 매일 공을 때려야 한다. 아마추어는 연습하는 양도 부족하고 몸의 유연성도 떨어지고 골프 지식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쉽게 골프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신문 사설 읽기였다. 신문 사설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마추어 골퍼에게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았다.”

―우리나라는 유독 스윙의 폼을 많이 강조한다.

“아마추어는 프로처럼 스윙을 복잡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원포인트 레슨을 할 때 스윙 이론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최근에 세계 100대 코스를 찾는 방송 촬영을 위해 영국에 갔다가 로리 매킬로이의 스승을 만났다. 이 사람이 과거 스페인에서 한국 주니어 골퍼를 만났던 이야기를 하는데 왜 한국 선수들은 스윙을 하는데 선을 긋고 모양에 집착하느냐고 하더라. 그 사람은 골프 스윙은 그저 팔을 들었다가 내려 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는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사이에 자신의 스윙 폼이 잡힌다. 그것이 크게 변하질 않는다. 그게 자기의 틀이다. 다들 머릿속엔 김효주 같은 폼을 생각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만족하지 못한다. 골프가 잘되느냐고 물으면 100명 중 99명은 그렇지 않다고 할 거다. 골프는 모델처럼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내고 싶은 곳에 정확하게 공을 보내는 골프가 최고다. 보내려고 하는 곳보다 10m를 더 멀리 보낸다고 해서 좋은 골프가 아니라는 거다.”

―멘털은 어떤가.

“연습할 때는 장애물이 없으니 편하게 칠 수 있지만 실전은 다르다. 벙커도 있고 핀 위치도 매번 다르고 동반자보다 더 잘 치고 싶으니 문제가 생긴다. 평상시대로 쳐야 하는데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버린다. 골프의 가장 나쁜 적은 내 머릿속의 나쁜 생각이다. 그래서 연습 스윙을 하듯 해야 한다. 어드레스를 하고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한다. 연습처럼 생각하고 탁 치는 것이 최고의 스윙이다. 개그맨 김국진 씨가 그렇게 친다. 골프는 덤비면 안 된다. 연습장에서 공이 너무 잘 맞아 감을 잡았다 하는 순간 내가 죽는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머릿속의 나쁜 생각부터 지워야 한다. 동반자를 이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지는 거다. 골프는 남이 아닌 자기와의 싸움이다. 내가 무언가를 ‘꼭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안되는 거다. 골프는 꼭이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마치 인생처럼 말이다.”

―힘 빼고 헤드 무게로 가볍게 쳐야 한다는 것을 자주 강조한다.

“최근에 김국진 씨와 골프를 치는데 그날은 잠을 자지도 못할 만큼 몸이 아팠다. 내가 디스크 6·7번에 협착이 있다. 그런데 김국진 씨가 방송 스케줄도 빼고 나랑 골프 치러 오는데 취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김국진 씨에게 ‘오늘은 내가 드라이버를 150야드만 쳐야겠다’고 말하고는 힘이 잔뜩 빠진 상태에서 쳤는데 250야드를 쳐버렸다. 김국진 씨가 거짓말한다고 나보고 뭐라 하더라. 그때 골프는 정말 가볍게 쳐야 한다는 걸 다시 배웠다.”

―시니어들에겐 어떤 조언을 하나.

“나는 어릴 때 운동을 많이 했는데도 나이를 먹으니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스윙을 할 때 체중 이동이 왼발에 오질 않았다. 임팩트를 하는 순간에 왼발에 체중이 와야 하는데 순발력이 따라주질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드레스할 때 체중의 60∼70%를 왼발에 두고 친다. 시니어는 임팩트를 만들어 놓고 쳐야 한다. 두 번째는 판단력이 떨어진다. 시니어가 되니 두뇌 회전이 늦어지고 몸도 딱딱해진다. 이런 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는 순간 골프가 쉬워진다. 반대로 내 골프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려워진다.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만큼 빨리 달리지 못하는 건 받아들이면서도 왜 골프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나. 인정하면 골프가 편해진다.”

―선수로, 교습가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건 골프학교다. 투어 선수도 육성하고, 골프 산업을 위해 일할 사람도 길러보고 싶다. 선수를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선수가 될 순 없다. 전투력 있고 근성 있는 사람이 투어에서 경쟁할 수 있다. 스윙이 제아무리 좋다고 해도 압박이 싫고 경쟁이 싫다면 선수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골프 산업으로 가서 서비스한다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선수 양성을 위해서는 골프장을 내 마당같이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여러 방법을 찾고 있다.”

“러프·벙커·강풍의 아일랜드… 제자들과 조금 더 일찍 찾았더라면”

 

악조건 두루 갖춘 코스 가보니

공 다루는 기술 배우기에 제격

임진한 프로 제공
임진한 프로 제공

임진한 프로는 최근 2주 가까이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지역을 찾았다.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세계 100대 코스를 찾기 위해서다. 이들 지역에 자리한 로열포트러시, 캐슬록, 로열카운티다운 등을 찾았다. 척박한 아일랜드의 링크스(links) 골프장을 찾은 임 프로는 자신이 30년 전 이곳을 찾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 일찍이 이곳을 찾았더라면 더 많은 한국인 메이저대회 우승자를 배출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임 프로가 찾은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지역의 골프장은 해변가에 깊은 러프와 벙커, 거센 바람에 악천후까지 모든 악조건을 두루 갖춘 링크스 코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단순히 멀리 똑바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임 프로의 설명이다.

임 프로는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라운드 도중 180야드가 남아 두 번째 샷을 치려는데 현지 캐디가 130야드만 보내면 된다고 했다는 것.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현지 환경을 더 잘 아는 캐디의 조언에 따라 정확히 130야드를 보냈더니 강한 바람을 따라 180야드나 가더라는 것이다.

반대로 링크스 코스에서 촬영을 마친 임 프로는 처음 찾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홈 코스인 홀리우드 골프클럽에서는 가뿐하게 라운드를 마쳤다. 가장 어려운 3개 홀을 함께 돌아보자는 지배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임 프로는 보기와 파, 버디를 하나씩 잡았다.

임 프로는 “링크스 코스에서 고생하다가 우리나라 골프장 환경과 비슷한 ‘파크랜드(parkland)’에서 골프를 하니 공을 갖고 놀게 되더라. 그러니 험한 아일랜드에서 골프를 하다가 미국에 오면 잡초에서 치다가 카펫에서 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내 나이가 60살만 됐어도 당장 아일랜드에 와서 선수 양성을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남자 골프선수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면 환경이 거친 아일랜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골프의 기본을 한국에서 배웠다면 공을 다루는 기술은 아일랜드에서 배운다는 개념”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오해원 기자
오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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