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대면소통은 상대 정해지지만

SNS는 불특정 다수가 대상

 

글을 올린 뒤 불안·우려감에

이젠 자꾸 부담스러워 꺼려져

 

친구에게 그냥 거는 전화처럼

SNS도 그렇게 소통해봤으면

지난 5월 말일, 두 달여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보고 싶었던 분들도 만나고 가고 싶은 곳들도 가보고, 일본에도 다녀오면서 꽤 바쁘게 지내다 왔다. 늘 그렇듯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는 못해 아쉬움이 있지만,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내다 와서 만족스럽다.

2014년, 오랜 세월을 보낸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뒤로 코로나19 때 외엔 1년에 한두 번은 꼭 한국을 방문했다. 매번 비슷한 일정을 보내고 만난 사람도 비슷하지만, 숙소는 항상 다른 지역으로 정해 두고 가 보지 않은 곳을 적어도 몇 군데라도 다녀보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서울 보문동과 대림동에 숙소를 정했다. 최근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도 다녀왔다. 그 밖에도 외국인 밀집 지역 언어 사용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여러 곳을 찾았고, 흥미로운 관찰을 할 수 있어 유익했다. 비슷한 장소를 다시 찾으면 반갑고, 새로운 곳을 찾을 때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 어디든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방문을 할 때마다 조금씩 특징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회관계망(SNS)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의도가 있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의지를 드러내려고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에 과연 오로지 ‘그냥’이기만 한 게 있을까. 무의식적으로라도 어떤 행위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SNS는 직접적인 대면 소통과는 사뭇 다르다. 직접적인 대면을 통한 소통은 상대방이 최소한 한 명이 있고, 많아야 몇 명이다. 예를 들어 교사 같은 특정 직업이라면 몇십 명과 동시에 소통을 하겠지만, 그때도 대체로 누구인지 잘 아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역시, 비록 대면을 통한 직접 소통은 아니지만, 상대는 한 명이거나 인원이 한정된 ‘단톡방’을 통해 대화가 이뤄진다. 적어도 소통을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습에 맞게 해야 할 말과 말아야 할 말을 적절히 구분해 소통하는 게 기본이다. 학생이라면 부모나 친구, 선생님 등 대화를 주고받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관계에 맞게 소통한다.

하지만 SNS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물론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는 관계라 누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있지만, 알고리즘 때문에 내가 올린 글이 특정 상대방에게 과연 노출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 내가 올린 글을 꼭 보기를 원한다면 태그를 거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반드시 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소통의 대상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유로 SNS에 글을 올릴 때는 일종의 불안과 우려를 갖게 되고, 자연히 글을 올릴 때 여러모로 조심하게 된다. 내가 올린 글을 누가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대체로 올리는 글은 일종의 현황 보고가 많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주로 올린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글을 올릴 수도 있지만,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이를 덜 보여주기 때문에 점점 더 하지 않게 된다. 알고리즘을 무시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런 경우 ‘좋아요’ 수가 확 줄어든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느끼는 답답함을 SNS에 공유하고 싶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차단당하는 것은 기계의 지배를 받는 것 같아 불편하다. 상대방이 부정확하고, 알고리즘의 검열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자꾸만 SNS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다.

SNS에 뭔가를 올리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SNS는 주로 휴대전화에 최적화돼 있다. 나는 컴퓨터나 키보드로 글 쓰는 데 익숙해서 전화기로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 쉬거나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일은 내게는 또 다른 노동이다. 누군가와 식사를 같이할 때 음식을 찍어 올리는 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도 그런 순간을 포착해서 SNS에 뭔가를 써서 올리는 일도 마찬가지로 노동이다.

과연 나만 그런 걸까? 언어학자라 언어 사용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소통 공간으로서 SNS를 너무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SNS를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꽤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해줬다. 주로 40∼50대였다. 그들도 나처럼 SNS에 뭔가를 올리는 일이 부담스럽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올리는 글이 다 비슷비슷해서 신선한 느낌이 없어서 별로라고도 했다. 또 누군가는 불편한 댓글과 부정적인 반응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이 아니라 바로 이런 감정 때문에 이번 방문에서 SNS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40∼50대보다 더 젊은 세대들은 SN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분명한 것은, 그들도 비슷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 역시 채팅방을 많이 사용하고,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방식을 점점 더 선호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내용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을 많이 올린다. 젊은 세대들이 휴대전화기를 보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사회문제로까지 거론되지만 SNS 활용에 관해서라면 이들에게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옛날 친구에게 이유 없이 그냥 전화하는 것처럼 SNS를 아주 가벼운 소통 도구로 그냥 사용하는 그런 활용법 말이다. SNS를 통해 그 정도의 역할만 기대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