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문화부장
“오스카, 에미상은 받았지만, 토니상은 제일 거리가 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 축하드린다.”
황동혁 감독이 지난 9일 ‘오징어 게임’ 시즌3 제작발표회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밝힌 소감이다. 지극히 공감한다. K-팝과 영화, 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뮤지컬은 정말 요원해 보였다. 시장 규모가 방송·영화 등에 비해 턱없이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또 한 번의 쾌거를 일궈냈다.
최근 클래식 국제 콩쿠르 수상자 중에도 한국인이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핀란드 장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국제 콩쿠르 우승 박수예, 미국 워싱턴 국제 콩쿠르 첼로 1위 이새봄 등. 조성진과 임윤찬 이후 K-클래식은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 K-발레와 K-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발레에서는 전민철이 미국 유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받았고, 애니메이션에서는 장성호 모팩스튜디오 대표가 ‘예수의 생애’로 미국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다. 이들의 큰 성과에는 다양한 원동력이 있겠지만, 공통점은 분명해 보인다. 바로 아낌없는 지원과 숙성의 시간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뒤에는 우란문화재단이 있었다. 우란문화재단은 비영리 문화예술 지원 단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친인 고 박계희 워커힐미술관장의 뜻을 이어받아 2014년 설립됐다. 주로 실험적 성격의 공연과 전시를 후원해왔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당시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 출범한 CJ문화재단도 오랫동안 음악, 뮤지컬, 단편영화 등을 지원했다. 뮤지션 지원 프로그램인 ‘튠업’을 통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원한 뮤지션이 누적 210명이다. 그중에는 인기 팝 듀오 멜로망스, 록 보컬 카더가든 등이 있다.
클래식에는 금호문화재단이 있다. 금호가 1977년 2억 원을 출자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한국의 메디치’로 불린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꾼다’는 신념 아래 클래식과 미술 분야를 적극 지원했다. 국내 신예 음악가들 중 금호그룹의 후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특히, 손열음은 지난 4월 박 명예회장의 20주기를 맞아 피아노 독주회로 추모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껏 고무된 K-문학의 뒤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 교보생명의 대산문화재단이 있다. 대산문화재단은 광화문 글판, 문학 행사, 외국어 번역 지원 등의 사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렇게 기업이 설립한 문화재단들이 지난 10년간 문화예술 분야에 쏟은 후원금만 1조 원이 넘는다.
그러나 K-컬처의 미래를 기업의 문화재단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당연히 정부 차원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따라가야 한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문화가 꽃피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부디 그 말의 빛이 쉽게 바래지 않길 바란다. 이제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소속사 하이브의 주가가 껑충 뛰었다. 0%대 성장률로 침울한 경제 위기 속에서 문화산업은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자, 다시 판을 벌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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