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후 2시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토록 지시했다. 북한 측도 다음 날 대남 소음 방송을 멈췄다고 한다. 확성기 성능이나 방송 내용, 북한의 열악한 전력 사정 등을 고려할 때, 확성기는 남측이 유리한 비대칭 무기의 하나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과거부터 확성기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중단을 요구해왔다. 북한 소음 방송으로 인한 접경 지역 주민의 고통도 심각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확성기 방송 중단은 남북관계의 큰 틀에는 영향을 미치기 힘들지만,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운 모색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를 남북관계 호전으로 침소봉대할 위험성이다. 정부가 이달 말 예정된 해병대의 서북 5도 실사격 훈련 중단 문제도 검토 중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럴 경우,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조치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북한의 핵시설 확장과 핵탄두 급속 증강 위협, 북·러 밀착으로 인한 첨단무기 기술 이전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일방적이고 안이한 대북 접근법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밖에 없고, 북한과 세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 대통령은 12일 6·15 남북정상회담 25주년 기념행사에 보낸 축사에서 “소모적인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면서 “남북 대화 채널부터 복구하겠다”고 했다. 취임사에서도 “대화·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강력한 억지력으로 북핵과 군사 도발에 대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없었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 통상적으로 포함됐던 남북 정상회담 언급이 없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북핵 폐기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없는 남북 대화·협력은 유엔 제재를 허물고 결과적으로 북핵을 용인하거나 거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북핵 문제에는 눈을 감고, 협력만 얘기하는 것은 ‘가짜 평화’이면서 사상누각(沙上樓閣)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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