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마침표 71세 정길 씨
“술·담배 끊고 짜장면도 안먹어
헌혈하니 남도 돕고 나도 건강
앞으로 나이 기준 더 올렸으면”

“헌혈을 하면서 내 몸도 좋아지고, 누군가도 돕고… 이 ‘일석이조’인 것을 왜 안 해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200번 넘게 헌혈을 해 온 정길(71) 씨는 세계 헌혈자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 씨는 지난해 1월 70세 생일 전 생애 마지막 헌혈로 1997년부터 200여 회 이어온 헌혈의 마침표를 찍었다. ‘헌혈 정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현행 혈액관리법 시행규칙은 만 70세까지만 헌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대 때 우연히 마주친 헌혈의집에 들어간 뒤로 종종 헌혈해 왔지만,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 수혈 치료를 받은 뒤로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고 정 씨는 설명했다. “이 일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만큼 저도 누군가를 돕고 싶었습니다.”
정 씨는 헌혈하기 위해 술과 담배도 끊었다. 짜장면을 먹은 다음날 ‘혈액이 기름지다’는 이유로 혈소판 헌혈이 거부되는 일을 겪고 나선 기름진 음식도 끊었다. 이젠 헌혈 정년이 지나 헌혈을 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몸에 밴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 씨는 “그 나쁜 것들을 굳이 왜 이제 와서 시작하겠느냐”며 웃었다. 그는 “지금도 너무 건강한데, 헌혈 정년이 없었다면 계속 헌혈을 했을 것 같아 아쉽다”며 “건강한 노인들이 많아지는 만큼 헌혈 나이 기준에도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헌혈자 수가 감소하면서 헌혈 정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헌혈 건수는 2022년 264만9007건에서 지난해 285만5540건으로 20만여 건 증가했지만, 헌혈자 수는 2022년 132만7587명에서 2024년 126만4525명으로 6만여 명 줄어들었다. 혈액량 비축이 정 씨 같은 다회 헌혈자에게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고 추정되는 대목이다. 저출생으로 헌혈이 가능한 청·장년층 인구가 줄고, 의학 발달로 노년층 건강이 개선된 만큼 나이를 기준으로 헌혈을 막아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독일·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헌혈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건강한 중장년층의 헌혈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헌혈 가능 연령 상한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면서도 “연령 상한 조정은 헌혈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의학적 분석과 근거에 기반해 신중히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행 헌혈 연령 기준은 혈액관리법에 규정된 만큼,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율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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